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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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와 늘 함께했던 중요하지만 값싼 보물은 단연코 소금입니다.

인간과 동물의 몸에서, 소금은 신체의 수분 균형을 유지하고, 신경과 근육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필수적인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소금은 기원전 약 2000년 경에 식품 등의 신선도를 오래 유지시키는 천연방부제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요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그러다가 19세기에 이르러 냉장고가 등장하면서 소금의 가격은 내렸지만 수요는 오히려 더 큰 폭으로 증가하며 대중화가 이루어진 계기가 되었습니다.

소금은 짠맛이 나는 돌인데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암석입니다.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최초의 제조업이자 국가가 관리한 상품이었으며 국제간의 교역을 통하여 거래된 첫 무역품이 소금이기도 했습니다.

고대 로마시대의 3대 교역품 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황금과 노예, 그리고 소금이었으니 그 시대에는 소금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미루어 짐작할 일입니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기도 하지만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무기질입니다.

체액의 염도가 0.9%인데 만약 소금을 섭취하지 않아서 체액의 평형이 깨어지면 이는 물을 마시지 않아서 발생하는 탈수증세보다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합니다.

생리식염수의 염도가 0.9%인 것은 체액의 염도에 맞춘 것입니다.

우리나라 고대 역사에서도 소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2006년 도에 MBC-TV에 방영된 드라마 "주몽"에는 고조선의 후예들이 만주의 고산지역 부족이었던 부여족들과의 소금교역을 통해 고구려 건국에 필요한 재정적 기반을 다진 것으로도 나타납니다.

그 후 신라가 당(唐)을 끌여들여 백제(660년)와 고구려(668년)를 멸망시키고, 반도의 지배권을 탐내던 당(唐)나라 소정방(蘇定方) 장군의 부대를 축출한 후 대동강~원산의 남쪽을 통일(676년)한 뒤인 서기 680년 경에 서해안의 염전 소유권을 두고 당나라와 분쟁을 벌였다는 기록도 보입니다.

유럽의 경우 소금광산을 독점했던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소금광산의 지배권을 두고 살츠버그 대사교와 합스부르크 왕조 간에 전쟁이 발발하기도 했는데 이를 역사에서는 "소금전쟁"이라고 부릅니다.

이 전쟁에서 살츠버그(Salzburg) 측이 승리하면서 근래에도 할슈타트의 찬란했던 유적들이 발굴되고 있는 유서깊은 관광도시 살츠버그의 그 시절 호황이 소금전쟁의 승리에서 기인(起因)했다고 전해집니다.

 Salzburg는 "소금의 산"이란 뜻이고 "북쪽의 로마"라고도 불립니다.

신대륙이 발견되기 전까지 유럽의 무역은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소금패권에 좌우되었고,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독립전쟁 또한 발생원인의 중요한 부분이 "소금"과 관련이 있다고 전합니다.

마크 쿨란스키의 <소금>이란 저서에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노예를 살 때 노예의 몸무게를 재어 그 무게 만큼의 소금을 지급했고 로마에서는 병사들의 월급을 소금으로 주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소금이란 뜻의 영어는 "Salt"인데 이는 라틴어에서 소금을 뜻하는 "Sal"에서 파생되었고 급여를 의미하는 "Salary"나 판매의 뜻을 지닌 "Sale"등 돈과 관련된 단어들이나 "Salad" "Sandwich" 등 식품 이름의 뿌리가 소금을 의미하는 "Sal"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은 소금이 얼마나 귀한 존재였는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브르타뉴주 게랑드 지방에서 생산되는 일명 "게랑드소금"은 고급 소금의 대명사가 되어 국제시장에서 국내산 소금보다 수십 배의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습니다.

인체에 미치는 소금의 영향은 아주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하지만 적절한 양의 소금을섭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건강보건 기구들은 일일 나트륨 섭취량을 제한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보건기구(WHO)는 성인이 하루에 섭취하는 나트륨의 양을 2000mg(약 5g의 소금) 이하로 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과유불급의 순리적인 원칙을 따라야 합니다.

송명은 의약 전문기자 emmy21@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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