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해외동포언론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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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진실과 역사의식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누구나 느끼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점을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사)해외동포언론사협회는 (사)대한사랑 초청으로 대한역사문화탐방 일환으로 아산 현충사를 찾았다.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자 충무공의 업적을 기리는 성스러운 곳이다. 

1598년 충무공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전사 후 1707년 숙종 때 지방 유생들이 충무공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애민정신을 기리자는 뜻을 받아들여 사당건립을 추진하였다.

임진왜란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수군을 이끌고 전투마다 승리를 거두어 왜군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것은 후대에 잘 알려지지 않은 비사가 있다.

용감하게 싸우자는 의지를 다지고 하늘의 보호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출정 식에서 군신(軍神)을 모셨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른바 군신은 다신교 신화 등에 나오는 장졸들에게 전쟁에서의 승리와 무사귀환을 보장해준다고 하는 신을 일컫는다.

관우 등 생전에 전쟁에서 공을 세웠던 무장들을 신격화해서 군신으로 모시기도 했다. 

사진=해외동포언론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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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전래된 뒤에는 불교의 수호신장이나 사천왕을 군신으로 받들기도 했다.

반면 우리의 치우천왕은 환인이 다스리던 환국의 뒤를 이어 환웅천왕이 건국했다고 하는 배달국의 제14대 천왕이다.

우리 선조인 치우천왕은 중국인들도 숭앙하여 한나라의 시조 유방도 출정을 앞두고 제사를 올린 지고 무쌍한 군신의 존재이다.

치우는 중국의 여러 기록과 전설에서 헌원과 함께 탁록의 전투에서 싸웠다고 전해지는 전쟁의 신 또는 옛 부족(구려)의 지도자이다.

하지만 치우는 신화적으로 오랫동안 요괴, 마물 또는 괴물로 취급되었다.

중국에서는 치우천왕을 중국의 조상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치우천황을 도깨비 정도로만 알고 있고 붉은악마 상징으로만 알고있는 실정이다. 

역사학자들은 고대 중국 시대에 동북아를 호령했던 우리의 위대한 조상 치우천황을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전장의 장수들이 승리를 기원하는 둑제 후 출정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자부심을 가져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하튼 치우 신앙은 분명히 존재하였다는 점이다.

많은 중국의 군주들도 전쟁에서의 승리를 그에게 기원했듯, 시대와 기록에 따라서 그 위상이 천차만별이었다. 

천자의 재상, 대제후, 섭정과 서자 떨거지, 요괴, 재앙신 등으로 위상이 매우 달라진다.

한고조 유방도 치우에게 제사를 지내고있어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등 군신으로서 치우 자체에 대한 신앙은 면면히 존재해 왔다.

다만 이는 지역마다 달라서, 치우 신앙이 시작된 중국  동북지방에서는 상당히 대우가 좋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제사의 관습이 우리 역사 안에서는 고려시대부터 기록이 있어 국가의 군사권을 상징하는 제사로서‘둑제’라고 불렀다.

근세조선시대에는 장군들이 명을 받아 임지로 떠나거나 때에 맞추어 제를 올렸고 그 깃발을‘둑기’라고 하였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친히 주관하여 둑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세 군데에 나타난다.

왜군을 기어코  물리치려는 단호한 의지와 감투정신을  고양시키려는 고뇌에 찬  제사 의례를 차렸다는  반증이다.

이와 관련 서울의 뚝섬은 원래 '둑섬'으로 본뜻은 군신인 치우천왕께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다. 

우리 민족의 수호신 치우천황은 도깨비 부대를 이끌었고, 황제는 귀신부대를 이끌었다.

치우천왕을 도깨비라고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황제는 싸움에서 이기자 치우천왕의 시신을 다섯 토막 내어 다섯 방위에 각각 묻었다.

무속에서 굿을 할 때 군웅거리에서 청제, 적제, 황제, 백제, 흑제의 5제를 청하는 것은 5방위에 흩어져 있는 치우천왕의 신명을 불러 모으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중국에선 관우를 대표적인 군신(軍神)으로 모셨다면 조선시대에도 우리천왕을 모시고 큰 전쟁을 압두고 의례를 치뤘다는 점이다.

우리의 DNA에는 강인한 인내의 피가 흐르고 있다.

드디어 치우천왕을 나타내기 위해 유니폼에 새겨진 그 형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4강 신화' 한일월드컵 때에는 우리의 강력한 써포터즈 인, 붉은악마의 앰블럼으로 되살아났다.

임진왜란은 물론 수많은 외침에도 우리민족이 꿋꿋하게 국토를 수호 할 수 있었던 점도 치우천왕의 기운이 면면히 우리 역사와 우리의 DNA속에 녹아 있기때문이다.

금번 현충사 탐방은 민족의 역사의식이 고양되고 함양되어야 찬란한 전통을 지킬 수 있다는 교훈을 주었다.

(사)대한사랑이 역사 찾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사)해외동포언론사협회 수석부회장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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