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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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긴축 장기화 속에 중동 화약고가 터졌다. 국제 유가는 급등하고 환율이 요동치면서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高)’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문제는 지난달 무역수지가 37억 달러 흑자로 4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수입이 수출보다 더 많이 줄어든 탓에 생긴 ‘불황형 흑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가 맞고 있는 중대 위협 요소로 미ㆍ중 갈등과 경제 블록화 등에 따른 공급망 불안(43.1%), 반도체 수출 부진과 소비 부진 등에 따른 경기둔화(40%)를 꼽았다. 

한국 생산의 주요 해외 수출 대상 국가는 중국과 미국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미·중관계가 얼마나 중요 한지가 수치를 통해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  2021년 기준 중국 비중은 26.2%, 미국 비중은 18.5%이다. 

다행히  '불황형 흑자' 상황에서 반도체 수출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20%가량을 차지하는 반도체가  9월에 다시 효자 수출 품목이 되었다. 이에 한국 경제가 곧 반등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 수출 실적(99억달러)을 달성한 것이다. 반도체 생산이 회복을 시작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8월 반도체 생산은 13.4% 늘어 산업생산지수를 끌어올렸고 9월 반도체 수출은 올해 최저 수준의 감소율(-13.6%)을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오랜만에 희소식이 날아 들었다.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중국 내 반도체 공장에 별도 허가나 기간 제한 없이 미국산 장비를 공급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고 9일 대통령실이 밝혔다.  이번 미국 정부의 결정은 한국 반도체 기업의 최대 통상 현안이 일단락됐음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중국 반도체 공장 운영 불확실성을  걷어낼 수 있게 되었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생산량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0%와 낸드의 20%를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공장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장비를 상시 점검하고 문제가 있는 장비를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미중 관계 개선 조짐도 한몫을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9일 중국을 방문 중인 척 슈머 미국 상원 원내대표에게 미·중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국 관계"라고 표현하며 "변화와 혼란의 세계 속에서 '중국과 미국이 어떻게 지내느냐' 가 인류의 미래와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슈머 원내대표는 "미국은 중국과 충돌을 추구하지 않고 중국과 디커플링(decoupling·공급망 등 분리)을 원치 않으며 상호존중의 정신에 따라 대화와 소통을 강화하기를 원한다"며 "양국간 무역 투자 협력을 강화하고 기후변화 대응, 마약 판매 타격 등에 대해 소통과 협력을 강화기를 기대한다"고 화답 했다. 

미중 관계 개선의 훈풍은 한·중 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싱하이밍(邢海明·Xing Haiming) 주한 중국대사는 2021년도 말 한국 매체와의 단독 대담에서  “미국의 동맹이자 중국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인 한국이 중미 사이에서 윤활제 역할을 발휘한다면 중미 관계 회복의 돌파구가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G2(미국과 중국) 패권 경쟁 가속화로 국제 정세가 경색 국면을 치닫는 상황에서 미중 사이의 조정자로서 '한국 역할론'을 제기한 발언이어서 주목된 바 있다. 

우리의 포지셔닝을 정확히 제시 해준 것이다. 그간 우리는 미중 강대국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된 꼴이라는 자조 섞인 반응도 많았다.  "고래 등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도 널리 회자 되어 왔다. 하지만 역으로 우리가 중심을 잡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주축으로 전략적인 유연성을 갖고 대중 관계를 이끌어 간다면 '어부지리' 상황을 만들 수 도 있다는 점이다.  

고집과 편견을 버리고 "시대의 흐름에 맞게 앞으로 나간다"는 '여시구진(與時俱進)' 정신을 다시금 되새길 시점이다. 

투수가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스트라이크를 던지기 쉽지 않는 법이다. 외교는 유연하게 예술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정권은 유한하고 외교(관계)는 무한하기 때문이다. 

이상기 칼럼니스트 sgrhee21@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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