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아닌 유럽 V4" 우크라사태 해결 실마리
헝가리에 이어 슬로바키아도 우크라 사태 자기 목소리

'비세그라드'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유럽에서 정치 경제적 독자적 위치를 점하기 위한 상징이다. 사진은 비세그라드 옛날 성에 전시된 그림으로 적에 대항하는 비세그라드의 항전 모습을 그리고 있다./사진=겨레일보 제공.
'비세그라드'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유럽에서 정치 경제적 독자적 위치를 점하기 위한 상징이다. 사진은 비세그라드 옛날 성에 전시된 그림으로 적에 대항하는 비세그라드의 항전 모습을 그리고 있다./사진=겨레일보 제공.

8일 겨레일보에 따르면 헝가리를 선두로 총선을 거친 슬로바키아가 우크라이나사태에 대해 유럽연합과는 다른 독자적 목소리를 낼 전망이다.  

로베르트 피코는 당이 집권하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슬로바키아의 군사지원을 전면 철회한다고 밝혀왔으며, 유럽연합의 대러제재를 공개적으로 비난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분쟁은 2014년에 시작된 것이며 우크라이나-네오나치가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에서 주민들을 살해한 것이 러-우 전쟁 원인이라고 말해왔다.

헝가리 친정부 일간지 '마자르넴젯'은  "슬로바키아 총선 결과는 헝가리의 승리"라고 전하면서 이는 "국가적 가치와 이익에 기반한 주권자 정치의 승리"라고 규정했다. 이어서 승리자 로버트 피코가 조만간 '비세그라드 4국'에서 헝가리의 평화 노력, 추가적인 대러시아 제재반대, 유럽연합 관료주의에 대항하는 투쟁과 국가적 가치를 옹호하는 데 있어 헝가리의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세그라드 그룹이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비세그라드 고지에서 바라본 다뉴브강. 유럽 10개국을 걸쳐 흐르고 있다. '높은 곳의 도시'라는 뜻의 비세그라드가 정치적 의미를 지니게 된 이유는 1335년 당시 이곳에서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에 공동으로 저항하기 위해 헝가리, 폴란드, 체코 3개국이 모여 협력관계를 맺은 것에서부터 출발한다./사진=겨레일보 제공.
비세그라드 고지에서 바라본 다뉴브강. 유럽 10개국을 걸쳐 흐르고 있다. '높은 곳의 도시'라는 뜻의 비세그라드가 정치적 의미를 지니게 된 이유는 1335년 당시 이곳에서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에 공동으로 저항하기 위해 헝가리, 폴란드, 체코 3개국이 모여 협력관계를 맺은 것에서부터 출발한다./사진=겨레일보 제공.

'높은 곳의 도시'라는 뜻의 비세그라드가 정치적 의미를 지니게 된 이유는 1335년 당시 이곳에서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에 공동으로 저항하기 위해 헝가리, 폴란드, 체코 3개국이 모여 협력 관계를 맺은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세 왕은 당시 교역의 거점이었던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를 거치지 않고 별도의 무역로를 개척해 유럽시장에 진출하기로 합의했다.

두 번째 회의는 1339년에 열려 폴란드 국왕의 계승문제에 합의했다. 1500년대 이후 3국의 영토 대부분이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지가 되면서 비셰그라드 회의는 중단되었다.

 2차 대전후에 세 나라는 다시 독립을 되찾았지만, 모두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해 공산화되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1990년에 3국은 독립했고, 이듬해에 역사의 뿌리를 찾아 지금의 지역공동체를 결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비세그라드 국가들이 '유럽 아닌 유럽'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

비세그라드 한국과의 협력

비세그라드 그룹은 지난 2015년 12월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개최된 한국과의 정상회의를 거쳐  '플러스'라는 타이틀 아래 아시아의 한국으로 협력관계를 넓혀나가는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토마쉬 후삭 주한 체코 대사는 2017년 한국에서 열린 비세그라드 국가 대사 모임 좌담회에서 "비세그라드 4국을 하나의 국가로 가정할 경우 유럽에서는 다섯번째, 세계에서는 열두 번째 경제강국"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만큼 비세그라드 그룹의 협력은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중시하면서 국민의 실익을 우선하는 비세그라드 그룹의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와는 다르게 서방과 나토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일방적 과도한 애정을 보이고 있다. 

나토의 동진문제로 야기된 우크라이나사태는 결국 근본적 해결의 실마리가 나토에 있고 우크라이나에 있다고 알려졌다. 

최규현 기자 kh.choi@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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