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차 세계대전은 "페니실린" 때문에 승리했다고 처칠이 말했습니다.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만들어냄으로써 인류를 감염병의 위험에서 구하고 의학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학자입니다.
플레밍(1881년~1955년)은 영국의 세균학자로서 푸른곰팡이로부터 추출한 원료를 활용하여 페니실린이라는 항생제를 개발한 사람입니다.
페니실린은 우연과 행운이 겹치면서 지구 상에 모습을 드러낸 경우입니다.
플레밍은 영국 런던의 한 병원에서 감염물질인 포도상구균(葡萄狀球菌)을 배양하는 작업을 하던 중 포도상구균을 푸른곰팡이균에 오염시키는 작은 실수를 범합니다.
*포도상구균은 포도알 모양의 작고 둥근 알갱이들이 마치 포도알처럼 불규칙적으로 붙어있는 감염력이 강한 세균을 일컬음
이 모습을 본 플레밍은 쓴 웃음을 지으면서 곰팡이가 핀 포도상구균이 담긴 접시를 폐기할까 생각하다가 다시 접시를 유심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푸른곰팡이가 피어있는 부분만 포도상구균이 죽어있는 것을 보고는 그의 머릿 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치명적인 포도상구균을 죽일 수 있는 약제가 없었기에 푸른곰팡이를 질병 치료에 활용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플레밍은 푸른곰팡이의 특정 성분이 포도상구균을 죽인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알아내고서 그 물질의 이름을 "페니실린"으로 명명합니다.
그러고서는 페니실린을 치료제로 개발하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페니실린을 치료제로 쓰기 위해서는 순도가 높은 제품을 만들어야 했고, 또한 대량생산체제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해 동안 연구에 매진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플레밍은 페니실린의 개발을 포기하려는 생각까지 했었다고 합니다.
포도상구균이 푸른곰팡이에 의해 죽은 것을 알게된 것이 1928년도였고 불완전하게나마 페니실린을 만들어낸 것이 1929년도 였는데 연구는 더 이상의 진전을 보지 못한 채 답보상태를 지속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처음 만들어낸 지 9년 후, 옥스포드 대학에서 공부하던 호주 출신의 세균학자 하워드 플로리와 영국인 화학자 에른스트 보리스 카인 등 2명의 학자들이 페니실린에 대해 쓴 플레밍의 논문을 읽어보고 드디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페니실린을 대량으로 배양하고 건조시켜 분말로 만들었으며 쥐를 상대로 임상실험까지 실시하여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열 마리의 쥐에게 포도상구균을 오염시킨 후 5마리에는 페니실린을 주사하고 나머지 5마리에는 약효가 없는 물질을 투여했습니다.
페니실린을 주사한 쥐만 살아남았습니다.
자신감을 얻은 두 학자는 1941년도에 드디어 사람을 상대로 임상실험을 하기에 이릅니다.
포도상구균에 감염된 실제 환자에게 페니실린을 투여시킨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항생제인 페니실린이 세상에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1944년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여받았고 하워드 플로리와 영국인 화학자 에른스트 보리스 카인 등 2명은 페니실린을 대량생산하여 인류를 위해 공헌한 점을 인정받아 1945년도에 역시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하기에 이릅니다.
글이니까 단 몇 페이지에 축약시켜 쓸수 있지만 그 시절에 페니실린을 연구했던 학자들의 수고가 얼마나 컸을 지를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배대열 보건식품 전문가 BDYTYY@nvp.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