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사진=뉴시스 제공.

임기종씨는 그동안 많은 방송을 통하여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방송을 통하여 유명세를 탄 그의 선행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또한 지게에 100Kg나 되는 무거운 짐을 잔뜩싣고 가파른 산을 오르며 물건을 날랐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고생을 하며 1시간 30분에 날랐던 짐들의 수고비가 고작 6000원이었다는 방송의 인터뷰를 듣고 

전국의 많은 시청자들이 일제히 물건의 짐을시킨 암자나 가계들에 노동력 착취에 대한 원성의 전화가 빗발치었고 찾아가 항의하기도 하였습니다. 

배우지 못하고 묵묵히 말없이 일하는 사람에게 고작 그 정도의 수고비는 노동력 착취라며 항의 하였던 것 입니다. 

결국 일을 맡겼던 그 분들의 일감은 자연스레 시키지않게 되었고 결국 임기종씨는 실직을 하는 아픔을 겪게되었습니다. 

방송때문에 오히려 일자리를 잃어 착잡하고 난감하였지만 오히려 잘 되었다 싶기도 하였습니다. 

방송만 아니었으면 70세까지 일을 계속하려 하였으나 마음이 아프기도 하였습니다. 

임기종씨는 그동안 벌어들인 돈 대부분을 주변의 불우이웃들에게 기부한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고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작금의 금리와 물가는 오르고 은행대출은 막혀있는 상황에서 삶에 실의에 빠져있거나 극단적인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오늘 소개 해 드리는 설악산 지게꾼 임기종씨의 살아온 삶을 생각 해 보시고 다시금 새 희망을 가져보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오늘의 인생스토리는 그동안 많은 언론이나 방송으로 소개된 임기종씨의 삶을 조명 해 보고자 합니다. 

단지 임기종씨의 험난한 삶을 애기하고자 하는것은 아니고 그분의 삶을 통하여 우리의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비움과 나눔을 실천 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임기종씨는 40년이 넘도록 설악산에서 지게질만 한 지게꾼이고, 키가 160cm도 되지 않고, 몸무게는 60kg도 나가지 않고, 머리숱은 듬성듬성하고, 이빨은 거의 빠지거나 삭아서 발음까지 어눌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16살 때 처음으로 지게질을 시작한 이후 45년간 오직 설악산에서 짐을 나르기 시작하여 금년 66세가 되었습니다. 

그 삯을 받아서 정신지체 2급의 아내와 그 아내보다 더 심각한정신장애를 가진 아들을 부양하고 사는 산 사나이라 했습니다. 

맨 몸으로 걸어도 힘든 산길을 그 무거운 짐을 지고 날마다 산을 오르는 임기종씨는 하루에 적게는 4번, 많게는 12번이나 설악산을 오르는 사람입니다. 

설악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상인들과 그곳 사찰에 필요한 생필품을 지어다주고 그가 받는 삯이 한 달에 150만원 남짓이라고 했습니다. 

한 달 수입이 150만원. 누구에게는 이 돈이 별 것 아닌 돈일지 몰라도 그는 충분한 돈이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장애인이라 정부로부터 생활 보조비를 받기 때문에 부족한 가운데서도 생활이 가능하고, 술 담배를 안 하고 허튼 곳에 돈을 쓰지 않으니 먹고 사는데 불편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낱 지게꾼에 불과한 그를 많은 사람들이 작은 거인이라고 칭송하는 까닭은 그가 그렇게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자신과 가족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십년이 넘도록 장애인 학교와 장애인 요양시설에 생필품을 지원하고, 
독거노인들을 보살피고,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자신이 번 돈 모두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임기종씨가 그렇게 사용한 돈만 1억원이 넘는다는 말에 모두들 깜짝 놀랐습니다. 

"힘들게 일을 하지만 적어도 땀 흘려서 번 돈 만큼은 내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임기종씨의 이 말에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던지요. 

연봉이 수억이네 수십억이네 하는 사람들도 하기 힘든 것이 
남을 돕는 일인데 날마다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을 오롯이 남을 위해 사용하는 그의 선한 마음이 한없이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마다 산을 오릅니다. 

자신이 지게를 짊어지지 않으면 휴게소 상인들이 장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떤 날은 가스통을 4개나 짊어지고 산을 오르기도 하고, 어떤 날은 100kg이 넘는 대형 냉장고를 통째로 짊어지고 산을 오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지게를 지는 요령을 몰라 
작대기를 짚고 일어서다가 또는 빗길 눈길에 넘어지기 일쑤였습니다. 

"너무 힘들어 몇 번이나 그만 둘 생각도 했죠. "

"하지만 배운 게 없고 다른 재주가 없으니 육체일 밖에 할 것이 없었어요". 

"그때는 내 몸뚱이 하나 살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거든요. "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설악산을 오르니 이 세상에 나보다 설악산을 더 많이 오른 사람은 아마 없을 것 입니다. 

"매일 오르지만 지겹다는 마음은 전혀 없어요"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철마다 설악산의 풍경은 바뀌고 산새와 계곡물들이 함께 하니까요" 

"그러니 고맙지요.”그는 일찍이 조실부모 했습니다" . 

열 살이 갓 넘었을 때 부모가 연달아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원체 가난한 집안이었기에 남겨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6남매의 셋째였습니다. 그렇게 남겨진 6남매는 제각기 자기 입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도 못 마친 그는 남의 집 머슴살이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돌고 돌아 설악산 지게꾼이 되었습니다. 

그는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겼고 온몸에는 피멍으로 얼룩졌습니다. 

등산객들이 먹을 것들을 흔들바위에서 대청봉까지 6시간 걸려 옮기는데 흔들바위까지  2시간에 2만원 비룡폭포 1시간30분에 6천원을 받는다 합니다. 

비선대를 하루 다섯번을 오르기도 하고 대청봉은 왕복 10시간이나 걸린다 합니다. 

가장 힘든곳은 양폭산장이 3시간이 넘는 계곡길에 오르막 경사가 자그만치 90도인데 등짐을 지고 기어 올라간다 합니다. 

이러한 내용이 방송에 보도되자 노동력 착취라는 많은 독자들의 항의에 실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원래 꿈은 뛰는게 자신있어 마라토너였는데 형편이되지 않아 먹고 살기위해 지게일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요즘은 공사장에 나가 내부 철거일을 간간이 한다고 합니다. 

가끔 등산객들의 짐을 매고 올라갈 때는 설악산은 자신을 품어주고 안아주니 내 부모와 같은 편안함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 한 지게꾼 선배로부터 정신지체 2급에다 걸음걸이도 불편한 여성을 소개받았습니다. 

그 선배는“이런 여자는 자네와 살림을 살아도 결코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며 그에게 소개를 했습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의 아내는 일곱 살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여자를 소개해준 것은 내가 별 볼일 없어서 그랬겠지만, 어쨌든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에 어찌나 애처롭던지요. 

"불편한 몸이니 그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구박을 받았을까 싶어서 따지지 않고 내가 돌보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와 정상적인 대화가 되지 않으니 많이 답답하기는 하지만 그것조차도 자신의 팔자로 받아들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돌보지 않으면 그의 아내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끝까지 그녀를 돌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들 부부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말을 못했고 아내보다 더 심각한 정신장애 증세를 보였습니다. 

아내가 정신장애를 겪고 있으니 그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하려면 자신이 일을 그만둬야 했는데 그럴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결국 아이를 강릉에 있는 어느 정신요양 시설에 맡겼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이를 데려다 주고 떠나오는데 그는 ‘나만 편하려고 그랬다’는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용달차에 과자 20만원어치를 싣고서 다시 발길을 돌려 시설로 되돌아갔다고 합니다. 

그 과자를 먹으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니 자신이 훨씬 더 기뻤답니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 사람만 기쁜 것이 아니라 자신도 기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임기종씨는 지게일로 번 돈 모두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임기종씨의 선행은 널리 알려져 2005년도 MBC및 강원도 봉사대상과 2007년도 대한민국 봉사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리고 2012년도에는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고 이때 받은 상금 1800만원도 모두 기부하였습니다. 

그동안 숱하게 남들을 도왔지만 그는 친구가 없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에 누구와도 가깝게 하지 않으려는 성격이기도 합니다. 

40년 동안 설악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였지만 설악산 말고 다른 산에는 여태껏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임기종씨는 

옛날 어느 전설에 하늘에서 천사가 설악산에 목욕하러 내려왔다가 미처 올라가지 못한 천사 한 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임기종씨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있는 것이 부족하다며 늘 더 가지려고 바둥거리며 사는 우리네 인생입니다. 

남의 입에 있는 것도 뺏어 먹으려고 하는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들과 배 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이기주의가 되기도 합니다. 

"이고지고 갈 것도 아닌데" 우리는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놀고 너무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 아침 임기종씨의 삶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한번쯤 뒤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형권 칼럼니스트 leehyung@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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