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영하회족자치구영무시백급탄국가자연보호구에서열린‘중한우호림’제막식현장(오른쪽네번째필자).
2014년 10월, 영하회족자치구영무시백급탄국가자연보호구에서열린‘중한우호림’제막식현장(오른쪽네번째필자).

내몽골 나이만기 호르친 사막,과거 수많은 나라와 민족의 기병(騎兵)들이 말을 달렸을 열사의 땅이다. 더러푸릇푸릇한 녹색 거죽이 비치기는 하나, 사막은 어떻게 봐도 모래바람과 열기가 지배하는 극한의 땅이다.

이런 열사의 땅에 필자가 발을 내디딘 것은 13년 전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끝없이 쏟아지는 일에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감을 놓치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새해 공휴일,아무 목적도 없이 나는 당겨진 활시위를 풀어놓듯 호르친 사막으로 훌쩍 떠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막은 기대 이상으로 황량했다. 나무 한 그루,풀 한 포기 볼 수 없이 막막했고,모래들이 바람에 날려 쉼 없이 남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날리고 날리던 모래가 어느 해에는 사람이 살았을 마을을 반쯤 파먹은 모습을 보기도 했다.

긴장을 풀러온 사막이었으나,그 사막의 흙빛 거죽 앞에나는 다소 무력했다.그러나 다시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생명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은 이 땅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마치 사막처럼 황량했던 당시 내 마음처럼 사막을 살리면 내 마음도 살아나리라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한국 명지대학교에 재직 중인 박준호 교수를 만나며 그 소망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박 교수는 1999년부터 중국 사막에 나무를 심는 데 매진해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2010년내 추천으로 중국 최고 환경보호상인 ‘녹색 기여 인물 국제공헌상’을 받은 사람이기도 하다.“사막에 나무를 심어야겠다”는 내 말에 박 교수의 자원봉사팀 ‘황막사’(황사를 막는 사람들)은 기꺼이 동료가 되어주었다. 나는 이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중앙민족대학 자원봉사자 22명을 동원했다. 그리고 50여 명의 인원이 그때부터 5년간 사막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사막에 나무를 심는다는 건,그냥 묘목을 가져다 꽂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천만의 말씀이다. 사막의땅은드릴로 구멍을 뚫어야 한다. 그리고 모래 바람이 그 구멍을 막아버리기 전에 나무를 재빨리 심어야 한다. 

양말에 속옷 안까지 털어도 털어도 빠지지 않는 모래는 덤이다. 그래도 70세 노인부터 암 진단을 받은 50세 한국 여성까지 여러 봉사자가 쉬지 않고 나무를 심었다.

이렇게 끝없이 나무를 심어가는 과정에서 만난 인연들도 있다.특히 ‘사막화 방지 영웅’ 백급탄국가자연보호구왕유덕 국장이 그렇다. 나는 한창 나무에 몰두하던 2012년 제자의 소개로 왕 국장을 처음 만났다.

왕 국장은 지프를 동원해 나를 모래산 정상으로 데려가 ‘무우스 사막’의 전경을 구경시켜주었다.정상에 오르니 모래의 이탈을 막기 위해 밀짚을 꼬아 만든 줄들을 격자 모양으로 깔아놓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왕 국장은 사막을 보여준 뒤 “이 사막에도 나무를 심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하여 황막사 회원들과 박준호 교수,왕 국장, 중국조선민족사학회 단체 회원 등 여러 사람들이 무우스 사막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생긴 숲은‘중한 우호림’으로 명명하기로 했다.

숲의 이름을 지으며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녹색 장벽으로 황사를 막고,양국 국민 간의 우애를 다이아몬드처럼 증진하자”고 다짐했던 게 생각난다.

그리고 호르친 사막과 무우스 사막을 넘나드는 나무 심기가 이어지면서 나무인연들도 점점 늘어났다. 회족 출신인 왕흥동 국장,몽골족 출신인 위몽 부국장,한족 출신인 송건국 사장 등 왕유덕 국장의 동료들까지 나무 심기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중한 우호림이 올해로 10주년을 넘은 것을 생각하면, 나무가 민족과 국적을 뛰어넘는 인연을 맺어준 셈이 아닐까 싶다.

2013년 5월, 중한양국자원봉사자들이백급탄에서식수행사를펼치고있다(왼쪽네번째필자).
2013년 5월, 중한양국자원봉사자들이백급탄에서식수행사를펼치고있다(왼쪽네번째필자).

사막화 방지, 생태 개선, 식수 사업은 국경과 민족의 경계를 초월하는 공통 과제다.나무를 심는 것 이상으로 사막화를 방지하는 데 중요한 일은 없다.위몽 부국장은 중한 수교 30주년을 맞이한 신화통신 인터뷰에서 “한중 인사들은 나무를 심으며 깊은 우정을 쌓았다,우리의 우정은 매년 깊어지고 있다.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식수 사업의 위대함을 일설한 바 있기도 하다.

현재 백급탄국가자연보호구에는거대한 중한우호림 식수기념비가 세워져 있다.그리고 기념비석에는 중국조선민족사학회 조선민족발전전문위원회와 길림신문사 그리고 한국 ‘황막사’ 등의 이름이 함께 새겨져 있다. 

그리고 2015년 중국 국가임업국은 이 기념비석을 중심으로 한 사막 일대를 국가사막공원으로 지정했고, 2017년에는 중국 유일의 사막방지전시관을 중한 우호림 근처에 설립했다.그리고 2020년 12월, 영하회족자치구 은천시정부는 백급탄국가자연보호구를 ‘은천시민족단결진보시범단위’로 지정했다. 

이 또한 그동안 영하의 한족, 회족, 몽골족과 조선족 등 여러 민족 관계자들이 사막화 방지를 위한 식수 활동에 힘쓴 결실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한땀 한땀 나무를 심고 가꾼 숲에는 현재 연 만명 단위의 견학단이 찾아온다고 한다. 유엔에서도 세계 각국 대표단 참관을 주선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참으로 감개무량하기 그지 없다. 앞으로도 사회 실천이자, 인생 가치 실천, 환경 보호의 일환으로 나무 심기가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숲이 사막을 살리고 지구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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