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유명 작가이자 혁명가인 루쉰(魯迅)의 140회 생일을 기념해 9월 28일 상하이 시 작가 협회가 문예 회당에서 ‘루쉰 선생 탄생 140주년 기념 간담회’주최하였다. 이번 간담회에서는 시문학계학계신문 출판계의 대표들이 참석하였고, 상하이 당협조 서기이자 전임 부주석인 왕웨이(王偉)가 회의를 주재하였다. 상하이 시 당위 홍보부 상무 부부장인 호강쥔(胡强軍)은 루쉰이 상하이와 인연이 깊다고 말했다. 상해에서 루쉰은 《삼한집(三闲集)》, 《이심집(二心集)》 등 일 연의 작문 집을 내었고, 《분유(奔流)》, 《조화주간지(朝花周刊)》, 《역문(译文)》 등 진보적인 간행물을 편집하며 《이야기신편(故事新编)》 등 고전적인 작품을 집필하였다. 그리고 그것들이 이미 상하이 문화 정신의 일부분이 되었다고 말한다.
루쉰에게 진정한 자신감을 배우다.
상해 작문 협회 부주석이자 연극학원의 부원장 양양(楊揚)은 루쉰은 음풍농월을 읊은 문학가나 지위를 추구하는 인사가 아니라 평생을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문학의 실천자라고 말했다. 루쉰은 병든 사회에 대해 가감 없이 비판하여 문학가의 예리하고도 현대적인 안목을 드러내었다.《광인일기(狂人日记)》,《축복(祝福)》속 인물들의 신경 묘사나 《고향(故乡)》와 《공을기(孔乙己)》속 인물들을 대조하는 등의 문학적 탐구를 통해서 루쉰의 사회 비판적 의식을 알아볼 수 있다. 루쉰은 중국 신문학의 가장 강력한 사상적 전통과 예술을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신문학의 가치와 사회적으로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간담회에서 양양은 루쉰 작품의 영향으로 지루하고 보잘것없다고 평가받았던 소설이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대 소설은 인간의 문화이자 인생의 교과서이다. 국가를 더욱 강성하게 할 수 있으며 일생을 바칠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언급하였다.
상하이 작문 협회 위원인 복단대학교 가오원바오(高元寶) 교수는 문학적 자신감 측면에서 루쉰의 작품을 설명했다. 그는 현대 중국인들은 굴원과 사마천 덕분에 문화적 자신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연명, 이백, 두보, 소동파와 조설근과 54 이후 루쉰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문화적 자신감이 지속될 수 있다고 말한다. 루쉰은 가장 출중한 전통문화의 계승자이며 신문학의 가장 위대한 개척자이자 건설자이다. 오늘날 중국 문학은 고전 문학뿐만 아니라 루쉰이 이끌어갔던 100년 동안의 중국 신문화를 말한다.
가오원바오는 루쉰의 자신감이 그의 겸손함과 사실적인 태도에서 나온다고 언급했다. 루쉰이 말년에 쓴《중국인이 자신감을 잃었습니까?( 中国人失掉自信力了吗?)》는 중국인이 자신감을 가질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토곡사에 누워 허무맹랑하고 맹목적인 자신감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진정한 자신감은 민족을 위한 희생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루쉰은 말년에 중국인이 외국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평가를 담은 《입이존조(立此存照)》라는 글을 썼다. 그는 마지막에 “외국인들이 묘사하는 중국인을 보며 자성하고 분석하며, 그들의 말이 옳은지 알아보고 변혁한다. 하지만 타인의 용서와 칭찬을 바라지 않고 어떠한 것이 중국인인지를 증명한다.”라고 언급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것 또한 자신감이다. 어떤 것이 확실한 자신감인지, 어떻게 하면 진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루쉰은 일생을 문학적 분투는, 허무맹랑한 자신감을 비판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최종적으로 ‘중국의 등줄기’가 바로 진정한 자신감이다. 가오원바오는 루쉰을 기념하고 배워야 하고, 그 증에서 중요한 점은 그에게서 확실한 자신감을 배우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루쉰을 배우고, 상해의 성과를 연구하다.
간담회에 참석한 협회원들, 부비서장, 작가 텅쇼란(騰昭蘭)은 자신의 창작 과정을 회고하며 자신들의 작문에 루쉰이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고백했다. 이전에 글짓기는 사람들에게서 차가운 시선을 받았기 때문에 그녀에게 글을 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루쉰 선생님의 애국애민의 심정과 책임을 배워 문학인의 책임과 사명을 공부하였고, 이제는 모두가 자각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텅쇼란은 루쉰의 글이 100년이 지난 지금도 후세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 끊임없이 격려하고 있는 것처럼 훌륭한 문학작품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막론하고 국내외와 지역적으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느끼게 한다며 이것이 글의 힘이나 문학인으로서의 최고 영광이라고 말하였다.
양양은 특별히 개혁 개방 이후 루쉰의 글을 학습하고 연구하며 학문적 성과를 내었다고 언급하였다. 1980년대 출간된 조경심(赵景深)의 《중국소설사략방증(中国小说史略旁证)》은 루쉰의 《중국소설사략(中国小说史略)》의 소재를 풍부하게 함으로써 중국소설사 연구를 한 단계 진전시켰다. 왕원화의 루쉰에 대한 생각은 그의 말년 사상을 뒷받침해주었다. 그가 발표한《루쉰연구에관한구상들(关于鲁迅研究的若干设想)》, 《루쉰과 주작인(鲁迅与周作人)》《루쉰의 굽은 과정(鲁迅的曲折历程)》등 사상의 근원을 사상사, 문학사적으로 정리하였다. 첸구용(钱谷融)은 《상처를 말하다(谈<伤逝>)》에서 루쉰의 소설 《상처(伤逝)》를 해석하여 독자로 하여금 새롭게 느껴지도록 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라 잡지《수확(收获)》에서는 루쉰의 전통문화에 대한 태도 문제에 대한 비판을 실어 신세대 문학가들에게 반 전통적 태도에 대한 재평가를 불러일으켰다.
상하이에서는 루쉰의 ‘광인일기’를 포함한 작품을 각색하여 무대를 꾸몄다. 루쉰의 작품이 얼마나 많은가에 대해서 국어교육 분야의 토론이 일기도 했지만 중국의 국어 교육은 늘 루쉰의 작품을 수반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중국의 학생들에게 루쉰이라는 이름은 결코 낯설지 않다.
양양은 정보가 넘쳐 흐르는 오늘날 루쉰의 글은 결코 잊히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은 그를 알아가며 정신적 충만감과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루쉰을 받아들이는 방식
화동사범대 황핑(黃平) 교수는 80년대 청년들의 대표로 연설했다. 그는 “우리 세대는 다른 세대와 마찬가지로 루쉰 선생님의 위대한 작품에서 가르침과 깨우침을 얻었다. 우리 세대의 문학은 청춘 문학이라고 불렸다. 대부분 작품들이 내면세계와 개인적인 경험에 치중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가작도 많이 내었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루쉰 선생의 140주년 같은 서점에서 100년 전 개벽한 청춘 문학을 돌아보며 우리 세대도 분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하였다.
황핑 교수는 인터넷상에서 유행처럼 번진 루쉰의 《이것도 삶이다(这也是生活)》의 한 구절인 ‘무궁하게 먼 곳에 수많은 사람이 나와 관련되어있다(无穷的远方,无数的人们,都和我有关).’ 언급하며 현대 청년들이 온전히 개인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구절처럼 한 사람의 운명은 타인과 직결되어 있고, 각자의 삶이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된다고 해설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황핑 교수는 사람들이 보다 문예 창작에 관심을 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대학생 대표로 화동사대 중국어학과 학생 차수니나(查苏娜)는 청년들이 자신을 표현하기 전에 주도적으로 100년 전에 쓰인 루쉰의 글을 찾아 읽으며 자문한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사회 이슈를 다루는 평론지에도 루쉰의 글은 빈번하게 이용되었다. 사람들에게서 큰 사랑을 받았던 역사극 《각성연대(觉醒年代)》을 통해 젊은이들은 루쉰에 더욱 빠져들게 되었고, 《들풀(野草)》을 모티브로 랩을 만들어 9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처럼 오늘날의 청년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루쉰의 글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
차수니나는 남을 비판하지 않는 진정한 루쉰의 애국주의가 더 깊이 연구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말했다. 앞으로 중대한 책임을 지게 될 청년들이 루쉰으로부터 미래를 볼 수 있는 선경지명을 배우고, 자신을 넘어 더 광활한 세계를 볼 수 있을 것이라 강조하였다.
상하이(중국)= 오수민 기자 ohsm@nvp.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