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태교수 / 사진 =네이버 ]

[뉴스비전e] 러시아산 불화수소가 여전히 주목거리다. 일본이 반도체 제조용 초고순도의 불화수소 공급을 중단한 만큼, 그 대체제로서 주목을 받는 것은 자연스럽다.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의 급한 민족성이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마음이나 태도로는 러시아산 불화수소를 반도체 제조용으로 쓰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이철태 동덕여대 특임교수(전 단국대 교수)겸 지식재산교육센터장은 최근 언론 기고에서 "불화수소는 유리 세공, 고 옥탄가 휘발유, 로켓 연료, (특수 고분자물질인) 테플론의 제조, 우라늄 농축공정 등 다양한 용도에 사용된다"면서 "그러나 초고순도 불화수소는 반도체 공정에만 필요할 뿐 그 외의 용도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불화수소 생산업체가 반도체 제조용으로 납품할 목적이 아니라면, 초고순도 불화수소를 생산할 이유가 없었다는 뜻이다. 또 고순도로 정제할 기술을 갖고 있더라도, 실제로 생산해 납품한 경험이 없으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실험을 해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시간이 필요하다.

또 하나. 러시아의 뛰어난 원천기술을 대하는 우리 기업의 자세다. 우리는 1차경제개발 계획이 시작된 1962년부터 양산화 기술개발에 주력해왔다. 미국와 일본 등 선진국의 핵심 부품들을 들여와 조립하거나 가공해 대량으로 생산, 수출하는 성장방식이었다. 일부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선박 등 주력 산업 분야에서 소재의 국산화가 이뤄진 것도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드러났듯이, 첨단산업에서 핵심 소재는 여전히 일본으로부터 수입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 교수는 "우리는 그동안 소위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될 수 있는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위한 연구를 하지 못했다"며 "손쉽게 소재 공급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구태여 소재 국산화에 아까운 투자를 할 이유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소재선진국으로부터 손쉬운 소재 공급이 아편과 같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불화수소가 화학분야라는 특수성도 있다. 이 교수는 "고순도 화학 소재는 아이디어나 특허만으로 생산될 수 없다"고 전제한 뒤, "초고순도 불화수소의 제조를 위해서는 불순물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증류(distillation)기술, 완벽한 설비와 오랜 경험을 가진 숙련된 전문 기술자가 필요하다"며 "무조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한다고 해서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정한 시간만 보장된다면, 불화수소를 반도체용으로 쓸 수 있을 만큼 러시아 화학 원천 기술은 뛰어난 것일까? 이 교수는 현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과대학 이사를 맡고 있다. 러시아 화학 분야에 대해서도 정통하다고 할 수 있는 전문가다. 그는 러시아 기술 수준을 아주 쉽게 정의했다.

"하나의 제품이 소비자의 손으로 들어오기까지 거쳐야 할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다. (제품) 아이디어가 나오고 이 아이디어의 실용화 가능성을 타진하는 연구나 실험이 대학 또는 연구소에서 이루어지는데, 러시아 기술은 바로 이 단계에 속한다. 우리 기업들은 러시아 기술을 마치 전자레인지에 넣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냉동 피자 수준의 상태이기를 기대하는데, 아니다."

기업들이 러시아로부터 신제품 개발에 필요한 원천기술 확보의 기회를 놓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이 교수는 안타까워했다. 이 단계를 넘어 기대했던 제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나 기술은 또 다른 형태의 톱 하이 테크놀로지(top high technology)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러시아엔 불화수소에 관한 한 연구소 단계의 원천기술이 있고, 초고순도 불화수소 제조에 40년 이상 경험을 가진 기술자가 이를 관리하고 있어 톱 하이테크놀로지를 가미하면 일본산 불화수소 대체제를 생산할 수 있다고 이 교수는 보고 있다.

사실 그만한 원천기술도 순순히 우리에게 내줄 나라가 거의 없다. 가능성이 있는 나라는 현재의 지정학적 국제관계나 역사적 관점에서는 러시아 뿐이라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비단 불화수소 뿐만아니라, 러시아로부터 원천 소재기술을 가져올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불화수소 파동을 계기로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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