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묘한 타이밍에 나온 러시아의 반도체용 불화수소 제공의사, 실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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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묘한 타이밍에 나온 러시아의 반도체용 불화수소 제공의사, 실체는?
  • 이현섭 기자
  • 승인 2019.07.1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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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비전e] 생소한 화학물질인 불화수소를 모르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어진 것 같다. 관련업계 종사자가 아니라면, 우리 몸에 닿는 순간 1분만에 피부가 괴사할 정도로 독성이 강한 불화수소를 우리가 평소에 접할 기회는 없었다. 그 유독 물질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 꼭 필요한데,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수출 규제를 가하자 한일감정과 맞물려 곧바로 유명(?)해졌다.

불화수소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기업은 물론이고, 정부도 의외로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30대 기업 총수를 청와대로 불러 대책회의를 가진 게 대표적이다. 다만 그 실효성이다. 국민의 과도한 불안감을 줄이는 데는 일정 부분 도움이 될 것이나, 반도체 업체의 현실적 위기 타개에는 별로 도움이 안될 것이다.

주목할 것은 러시아의 불화수소 제공 의사 표시다. 우선 절묘한 타이밍이다. 청와대 대책회의에서 불화수소 공급처의 다양화 제안이 나온 뒤, 러시아 측이 고순도의 불화수소를 우리 측에 제공할 수 있다고 제안한 사실이 공개됐다. 국내 한 언론이 특종보도하고, 청와대가 이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공식화됐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2일 "러시아가 외교채널을 통해 일본산보다 품질이 더 좋은 불화수소를 제공할 수 있다는 뜻을 전해왔다"며 "제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현지 언론도 이날 국내 언론을 인용, 보도했다.

반도체 회로를 깎고 불순물을 제거하는 데 필수적인 고순도 불화수소를 일본측이 진짜 공급을 끊으면, 우리 반도체 산업이 멈출 수도 있다. 만약 러시아산 불화수소로 일본산을 대체할 수 있다면, 우리 반도체 산업이 일본을 극복(극일)할 수 있는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우리가 러시아산 구매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러시아는 불화수소를 만드는 형석(螢石) 등 원자재가 풍부하고, 기초화학 원천기술 수준, 또한 높다. 고순도 불화수소 제조사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우랄지역, 시베리아 등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그러나 러시아 측이 외교채널을 통해 우리 측에 자국의 생산업체를 특정했는지, 최소한 염두에 둔 업체가 있었는지 여부도 아직은 불명확하다. 

러시아 포탈사이트 얀덱스(yandex.ru)에서 불화수소(HF, 러시아어로는 фторид водорода 혹은 фтористый водород)를 검색해보면, 취급 전문 쇼핑몰과 제조업체 등을 여럿 확인할 수 있다. '시베리아화학콤비나트' Сибирский химический комбинат,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재의 '깊흐-흘라돈' ГИПХ-ХЛАДОНЫ, '갈로겐' ГАЛОГЕН, '타우루스' 그룹 Таурус, '옵티마-우랄' Оптима, уральский завод 등이 눈에 띈다.

또 모스크바에서는 오는 9월 16~19일 국제화학산업및 과학전시회인 '화학-2019' (ХИМИЯ-2019: Международная выставка химической промышленности и науки)가 열린다. 러시아산 불화수소에 관한 정보를 다양하게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불화수소는 일반 공업용(순도 30~75%)으로 많이 쓰이는 화학물질이다. 고급 휘발유를 만드는 촉매제로, 프라이팬과 전선 피복, 안경 렌즈 등을 만드는 테플론(합성수지)의 재료로 사용되고, 에어컨과 냉장고의 냉매는 물론, 세탁용 합성 세제에도 들어간다. 이 시장은 값싼 중국산이 장악하고 있다. 러시아 화학전문 쇼핑몰에도 중국산 불화수소 제품이 많이 올라와 있다.

러시아산 불화수소를 국내 반도체 공정에 도입하려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6개월 정도의 실험 기간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반도체 공정에 사용 가능한 고순도의 불화수소가 필요한 데다 화학성분의 적합성 여부도 맞춰봐야 하기 때문이다.

700여 단계로 구성된 반도체 공정중에 불화수소가 쓰이는 곳은 약 40~50단계다. 특히 초정밀 엣징(깎기)에는 순도 99.999%의 불화수소가 필요하다. 그 정도 순도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포함된 화학성분 데이터가 사용 적합성 범위안에 들어와야 한다. 또 단계별로 쓰이는 불화수소의 순도·형태가 다르다고 하니, 기존의 시설 스펙(사양)에 따라 다양성도 확보해야 한다. 

러시아 불화수소 업체가 장기간 균일한 고 품질의 물량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최근 몇년간 러시아산 불화수소를 수입해 사용한 국내 업체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니, 당장 현장경험에 따른 신뢰 문제가 불거진다. 환경오염 문제 등으로 러시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생산업체에서 국내로 들여오는 안정적인 유통루트 확보도 쉽지 않아 보인다.

러시아산 불화수소는 이제 갓 논의의 시작에 불과하다. '발등의 불'을 끄기에는 당장 써먹을 수 없는 대안이다. 앞으로 또 있을 지도 모르는 일본측의 '원자재 부품 갑질'을 막기 위한 장기적 처방으로 유용할 뿐이다. 그것도 정부나 외교적 채널보다는 당사자들인 반도체 업체나 화학물질 전문업체들이 나서야 시간과 경비, 시행착오 등을 줄일 수 있다. 유통루트 확보, 또한 마찬가지다.

화급한 불화수소 물량 확보는 우리 정부가 일본과 정치적 외교적 협의를 통해 해결해야 할 일이다. 문제의 근원을 먼저 정확히 짚어야 적절한 해결방안이 보일 것이다. 정치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상대(일본)에게 경제적 잣대로 찾은 해법을 아무리 제시해봐야 통하지 않을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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