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 3daystartup.org>

[뉴스비전e 정윤수 기자]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스타트업들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동안 실리콘밸리에서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기업들이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하드웨어 업체들이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혁신 스타트업들을 중심으로 실리콘밸리가 다시 하드웨어 스타트업들의 요람이 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관계자는 "하드웨어 스타트업 중에서도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곳은 주방 가전 혁신 기업들"이라며, "IT 기기나 디지털 기기가 아니라 주방 가전과 같이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하드웨어 개발을 겨냥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화제가 되고 있는 스타트업은?

2018년 1월에 아마존닷컴의 벤처 캐피털(VC) 부문인 ‘알렉사 펀드(Alexa Fund)’가 이미지 인식 AI를 탑재한 ‘준 인텔리전스 오븐(June Intelligent Oven)’을 판매하는 ‘준 라이프(June Life)에 투자한 것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준 인텔리전스 오븐 딥러닝 기반 이미지 AI <사진 / june oven app>

준 인텔리전스 오븐은 본체 내부에 설치된 HD 카메라가 재료를 촬영하고 딥러닝 기반의 이미지 인식 AI가 재료의 종류와 상태를 인식해 최적의 온도에서 자동으로 조리해 주는 주방 가전이다.

준 라이프의 공동 설립자이자 CTO를 맡고 있는 니킬 보갈은 애플에서 아이폰의 카메라 개발을 담당했던 엔지니어였으며, 그 밖에 기업 직원의 절반이 애플 출신이다.

진공 조리나 저온 조리를 의미하는 '수 비드(Sous Vide)' 조리법을 구현하는 가전 스타트업들도 최근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아노바 컬리너리 <사진 / anova culinary.com>

수 비드 조리 가전 스타트업인 ‘아노바 컬리너리(Anova Culinary)’는 2017년 2월 유럽의 대표 가전업체인 일렉트로룩스에 2억 5,000만 달러에 인수되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일렉트로룩스가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3년에 창업한 아노바 컬리너리의 매출은 2016년 말 기준으로 4,000만 달러였다.

한편, 아노바 컬리너리 보다 1년 빠른 2012년에 창업한 또 다른 수 비드 조리 가전 스타트업인 ‘노미쿠(Nomiku)’ 역시 2017년에 삼성전자의 투자를 받았다. 노미쿠는 2017년부터 진공 조리용 식재료 택배 서비스도 시작했는데, 조리할 음식은 진공포장되어 배달되며, 진공 팩에는 RFID가 내장되어 있어 조리기의 센서가 RFID를 읽어 들이면 적절한 온도와 조리 시간이 자동으로 설정된다.

 

◆조리 가전 스타트업의 강점...레시피와 소프트웨어의 융합

이미지 인식 AI 오븐과 수 비드 조리 가전 등은 모두 음식을 조리하는 온도와 가열 시간을 아주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게 해준다. 요식업계에서는 이런 요리를 ‘TT 요리’라 부르며, TT는 Temperature(온도)와 Time(시간)의 약어다. 

조리 가전 스타트업들은 TT 요리를 위한 레시피를 자체 개발하고 스마트폰 전용 앱에 이 레시피를 전달해 스마트폰에서 조리 가전을 적절하게 제어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조리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작성된 레시피들은 ‘중불’, ‘고열’ 등 다소 정확하지 않은 모호한 표현으로 불의 세기를 설명하고 있어, 이를 본 사람들이 레시피를 충실히 재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에 비해 레시피에 충실한 맛있는 요리를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새로운 가전 스타트업들이 제공하는 하드웨어의 가장 큰 장점이다.

 

◆실리콘밸리의 적극적 지원 생태계...하드웨어 가전 스타트업 증가로 이어져

하드웨어 업체들을 지원하는 생태계의 핵심은 하드웨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과 스타트업을 멘토링하는 액셀러레이터 등이다.

가령 'HAX 액셀러레이터(HAX Accelerator)'는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 SOSV가 운영하는 하드웨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로서 노미쿠 외에, 상품 진열대 모니터링 로봇을 만드는 ‘심비 로보틱스(Simbe Robotics)’, 상품 배달 로봇 ‘디스패치 로보틱스(Dispatch Robotics) 등을 배출했다. 

HAX 액셀러레이터 <사진 / HAX Accelerator 홈페이지>

HAX 액셀러레이터의 모태는 SOSV가 2012년 중국 상하이에서 시작한 ‘차이나 액셀러레이터’로, 당초에는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대상 액셀러레이터였지만, 하드웨어 업체 대상으로 HAX를 중국 선전에 추가 설립했다. 2015년부터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거점을 두고 있다.

HAX에서는 시제품이 아직 없는 스타트업들에게 우선 선전의 거점에 입주해 시제품을 개발하도록 목표를 설정해 준다. 선전의 거점을 ‘졸업’한 스타트업은 샌프란시스코로 본사를 옮겨 이곳에서 ‘시장 출시(Go To Market) 전략’을 구상토록 하고 있다.

이미 시제품 개발을 완료한 스타트업은 선전 거점의 트레이닝을 생략하고 바로 샌프란시스코 거점에서 지원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HAX의 샌프란시스코 거점에는 자국에서 시제품 개발을 마치고 세계 시장 진출 노하우를 얻기 위해 모여든 스타트업들이 많이 있다.

<사진 / HAX Accelerator 홈페이지>

이들의 출신국은 대만, 홍콩, 인도, 크로아티아, 우크라이나,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 전세계에 걸쳐 있으며, 제2, 제3의 노미쿠와 아노바를 목표로 하는 하드웨어 기업들이 계속해서 HAX를 찾아 모여들고 있다.

하드웨어 액셀러레이터라 하면 하드웨어 개발만을 지원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스타트업들은 자금 조달 전략 및 마케팅 전략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실리콘밸리의 하드웨어 액셀러레이터의 문을 적극적으로 두드리고 있다.

게다가 이들 액셀러레이터는 중국과 대만의 ODM(주문자 상표에 의한 설계·생산) 사업자들과 연계되어 있어, 하드웨어를 개발하고 난 후 양산까지 원스톱으로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스타트업들로서는 액셀러레이터와의 협업이 성패의 중요 관건이 되고 있다.

반도체와 소프트웨어에 이어 이제 실리콘밸리는 하드웨어 스타트업들의 요람으로 또 한번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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