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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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19차 대러 제재 패키지를 협상하며 2026년부터 2028년까지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줄이기로 합의하는 데 시간이 걸린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바로 이 시기가 전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점과 정확히 맞물리기 때문이다. 미국과 카타르를 비롯해 여러 국가에서 대규모 신규 LNG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되면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는 가격 하락 압력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미국의 LNG 생산량은 2026년부터 2028년까지 3,000만~4,500만 톤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연간 총생산량은 1억 1,600만~1억 3,100만 톤에 이를 전망이다. 카타르 역시 2027~2030년 사이 생산능력을 7,700만 톤에서 1억 2,600만 톤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캐나다, 모리타니, 세네갈 등지에서 새로운 프로젝트가 출발선에 서 있으며, 러시아 역시 제재에도 불구하고 연간 1,300만 톤 생산이 가능한 우스티루가 복합단지 등 신규 LNG 공장을 추진 중이다. 참고로 2024년 러시아의 전체 LNG 수출량은 3,350만 톤 수준이다.

컨설팅사 Implementa의 이반 티모닌은 2027년 초까지 전 세계적으로 가동 예정인 신규 LNG 생산능력이 8천만 톤을 넘어 시장 총량의 약 20%에 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러한 급증이 가격 압박을 가져오겠지만 폭락을 유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효율이 낮은 공급업체들의 비용 구조가 일정 가격대를 떠받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27년 유럽과 아시아의 평균 LNG 가격은 1,000입방미터당 약 350달러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 에너지안보재단의 알렉세이 그리바치는 장기적인 초저가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신규 LNG 프로젝트는 손익분기점이 1,000입방미터당 250달러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그는 가격 하락이 역설적으로 아시아 수요를 자극할 수 있으며, 석탄 감축 정책과 결합될 경우 공급 과잉 기간은 짧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원전 중단이나 기후 변수 등 예측 불가능한 사건은 시장을 크게 뒤흔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KPT의 막심 마르코프는 LNG 수요가 경제 성장과 날씨라는 두 가지 구조적 요인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겨울의 혹한과 여름의 폭염은 수요를 급증시키며, 경기 회복 속도 역시 가격을 움직이는 주요 변수가 된다. 그는 구조적 하락이 예상되더라도 LNG 가격은 복합 요인에 따라 동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시장 변화가 러시아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오히려 제재와 물류 제한이 러시아 프로젝트의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티모닌은 러시아 LNG 공장이 원가 경쟁력 면에서 매우 우수해 운영비와 투자 수익을 충당하는 데 문제는 없다고 평가했다. 다만 제재 환경에서 생산능력 활용도를 확보할 수 있도록 새로운 고객과의 장기 계약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마르코프는 EU가 비시장적 조치를 통해 러시아 LNG를 배제할 경우 그 빈자리는 미국과 카타르가 채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 제품은 아시아·태평양과 남반구 국가들로 방향을 돌리며 시장이 사실상 인위적으로 분할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가격 하락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으로는 비용 구조가 가장 취약한 호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LNG 프로젝트가 꼽힌다.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세계 LNG 시장은 2026년 이후 ‘공급 폭증 → 가격 압력 → 지역별 시장 재편’이라는 커다란 구조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후, 지정학, 에너지 정책 등 변수는 여전히 많아 시장의 향후 궤도는 복합적 요인에 의해 지속적으로 요동칠 전망이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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