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전기차(EV) 배터리 산업이 심각한 공급 과잉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1월 19일, 현재 진행 중인 글로벌 EV 배터리 증설 계획이 2030년에는 실제 수요의 약 3배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며, 특히 북미 시장의 과잉 문제가 가장 심각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 여파로 미국의 주요 완성차 업체인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를 비롯해 일본 파나소닉까지 속속 투자 계획 조정에 나서고 있다.
미국 남부 켄터키주 엘리자베스타운에서는 포드와 한국의 SK On이 58억 달러를 투입해 대형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이 공장은 130여 개 도쿄돔에 해당하는 광대한 부지를 차지하며, 포드의 EV용 배터리를 생산할 핵심 시설로 계획됐다. 일부 시설은 지난 8월부터 가동을 시작했고, 현재까지 약 1500명의 직원을 고용했으며 2030년까지 5500명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그러나 전망은 밝지 않다. 포드는 EV 판매 부진으로 EV 부문이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투자 축소에 들어갔다. 셰리 하우스 CFO는 “2년 전 계획했던 배터리 생산능력을 35% 줄였다”고 밝혔다. 실제로 포드의 대표 전기 픽업 모델 ‘F-150 라이트닝’은 11월 중 생산 중단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며, 해당 모델에 들어가는 배터리는 바로 이 켄터키 공장에서 공급된다. 계획 차질은 지역 경제와 고용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GM 역시 비슷한 조정에 들어갔다. GM과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은 오하이오와 테네시에서 총 1550명의 감원을 발표했다. 메리 바라 GM CEO는 “단기적인 EV 수요 둔화와 규제 환경 변화를 고려해 생산능력을 재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기업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파나소닉은 미국 캔자스주의 신규 EV 배터리 공장 가동을 시작했지만, 당초 목표였던 2026 회계연도 말 전면 가동 시점은 미정으로 밀려났다. 이는 주요 고객사 테슬라의 판매 둔화가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각국 기업들이 계획을 수정하는 배경에는 미국 EV 보급이 초기 기대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는 냉정한 현실이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EV 산업 육성 및 보조금·세액공제를 확대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9월 EV 구매세액공제를 폐지하고 환경 규제를 철회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미국 재생에너지연구소(NREL)에 따르면, 미국 내 진행 중인 배터리 관련 투자 프로젝트는 1000여 개에 달하지만, 정책 변화로 일부 프로젝트는 중단이 불가피해졌다.
한편 세계 EV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 기업의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미국, 일본 등 주요국 정부는 경제안보 차원에서 자국 배터리 산업 육성을 강조해 왔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된 EV 수요가 오히려 정책의 역효과를 만들고 있다. 과도한 증설이 되레 재정 부담과 구조조정 압력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도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각국이 EV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자 수요가 급감했고, 독일 폭스바겐 등이 출자한 스웨덴 배터리 업체 노스볼트는 3월 파산 신청을 냈다. 미국의 EV 수요 둔화까지 이어지며 글로벌 배터리 산업 전반에서 대규모 재편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V 산업의 성장 속도가 냉각되면서 주요국이 추진해 온 ‘배터리 자국화 전략’ 또한 근본적 조정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