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제약회사 일라이 릴리(Eli Lilly)가 11월 21일(현지시간)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어서는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다. 이는 제약 업계 최초의 기록으로, 그동안 금융·기술 기업 중심이었던 ‘1조 달러 클럽’에 새로운 산업군이 진입한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인디애나폴리스에 본사를 둔 릴리는 테슬라, 버크셔 해서웨이 등 굵직한 대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미국 시장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기업 중 하나로 올라섰다.
릴리 주가는 21일 오후 한때 2.1% 상승한 주당 1,064.80달러를 기록해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올해에만 주가가 40% 이상 급등해 비만 치료제 시장 경쟁자인 덴마크의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를 크게 앞서고 있다. 급성장 요인은 단연 릴리의 티르제파타이드(Tirzepatide) 기반 주사제—혈당 강화 버전과 체중 감량 버전 모두 포함—가 폭발적 실적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약물은 다이어트 의약품 시장에서 ‘혁신 치료제’로 각광받으며, 3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번 분기 티르제파타이드 매출 총액은 101억 달러에 달했다.
제약사 전반에 대한 투자 심리도 한층 강화되고 있다. S&P 500 헬스케어 지수는 9월 말 이후 25% 이상 급등했는데, 이는 미국 내 약가 인하 정책과 관세 위험이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된 결과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제약 산업을 억눌렀던 정책 리스크가 현실적 부담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는 관측도 투자자들의 매수세를 자극하고 있다.
이달 초 릴리를 포함한 다수 제약사는 백악관과 협정을 체결해 일부 의약품의 가격을 인하하는 대신 연방 보험 프로그램(메디케어·메디케이드)의 적용 확대와 3년간 잠재적 관세 면제 혜택을 확보했다. 이 조치로 주요 제약사들은 시장 접근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정책 리스크를 상당 부분 줄이는 데 성공했다.
투자자들은 노보 노디스크보다 릴리의 비만 치료제 포트폴리오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릴리의 제품군은 효능과 판매 성장률 면에서 더 역동적이라는 평가가 많으며, 비만 치료제 시장의 구조적 확장세 속에서 릴리가 장기적인 시장 지배력을 가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릴리 측은 시가총액 1조 달러 돌파에 대해 “환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강력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기 위한 과학적 혁신과 전략적 투자에 대한 회사의 지속적인 집중이 만든 결과”라고 강조했다.
비만 치료제 열풍이 제약업계를 넘어 글로벌 금융시장 전체에도 작지 않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릴리는 새로운 ‘의료혁신 시대’의 대표적 수혜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차승민 기자 smcha@nvp.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