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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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가을과 겨울이 맞서는 절기, 입동이다. 단풍이 저물고 낙엽이 흩날리는 가운데 찬바람이 불면 산간 지역에는 얼음이 얼고 나무들은 옷을 벗기 시작한다. 옛사람들은 이 시기를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겨울을 준비하는 중요한 시점으로 여겼다.

예전에는 입동 무렵에 수확한 배추와 무로 김장을 담그는 것이 풍습이었다. 요즘은 김장철이 조금 늦춰지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입동은 ‘김장 시작을 알리는 절기’로 인식되고 있다.

농가에서는 입동 전후로 외양간과 곳간에 고사를 지내며 한 해 농사에 힘쓴 소와 가축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고, 소에게도 고사 음식을 먹이며 공동체의 정을 나누는 모습은 한국 농촌의 미풍양속으로 전해졌다.

또한 입동에는 ‘치계미(雉鷄米)’라 불리는 풍속이 있었다. 이는 꿩(雉), 닭(鷄), 쌀(米)을 뜻하며, 마을 사람들이 추렴하여 어른들을 사또처럼 모시고 음식을 대접하는 양로잔치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어른 공경과 공동체 의식을 상징하는 전통이었다.

입동 무렵의 별미로는 추어탕이 있다. 추수가 끝난 논 도랑에서 겨울잠을 준비하는 미꾸라지를 잡아 끓인 것으로, 치계미를 마련하기 어려운 가정에서는 대신 추어탕을 끓여 이웃과 나누며 따뜻한 정을 나누었다.

지역별로도 다양한 속신이 전해졌다. 충청도에서는 입동 무렵 보리싹이 두 개 보이면 풍년이 든다고 여겼고, 제주도에서는 입동날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해 겨울 바람이 매섭다고 했다.

입동은 단순히 절기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한 해를 정리하고 서로의 온정을 나누는 시기이기도 하다.

시인 설동필은 시 **〈입동월경(入冬月景)〉**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해질녘 산에 올라 시내를 굽어보니
희뿌연 세상사가 이토록 무상한가
한낮의 거친 일, 입동월경 맞고서
시름을 저 먼산에 날리고
동산에 달이 오르면 반백된 누이 생각
찬 입김 이슬 되어 동심으로 달린다.”

올해 입동에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잊고 지냈던 이들을 떠올리며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계절이 되길 바란다.

추위 속에서도 서로의 온기가 이어지는 건강하고 평화로운 겨울의 시작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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