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말의 정치다. 책임 있는 통치는 공개된 절차와 설득을 통해 완성된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권력 심장부, 대통령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와 정반대다. 

 강선우 여성가족부장관 후보자가 23일 전격  사퇴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의중이 김현지 총무비서관을 통해 전달된 결과라는 보도가 나왔다. 

 실제 김 비서관은 강 후보자가 사퇴하기 직전이 23일 오후 2시 직접 전화를 걸어"사퇴 해야 할 것 같다"라는 대통령의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단순한 ‘사퇴’가 아니라, 현 정권의 통치 방식이 얼마나 위험하게 변질되어 가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목격한 셈이다.

 대통령은 말하지 않는다. 대신 비서관이 움직인다. 여당 당직자도 아니고, 지도부도 아니다.  주무 담당부서가 아닌 특정인을 통해 ‘의중’이 흘러들고, 그에 따라 장관 후보자가  물러난다. 

 이것이 법적 강제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공개적인 정치 논의 끝에 나온 결정도 아니었다면, 그건 결국 ‘압박’이다. 

 이재명 정권의 통치 방식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조용하지만, 오히려 더 무섭다.  어쩌면 명령(?)이라고 해도 좋을 묵언의 지시는 문서로 남지 않고, 자칫 누군가 질 수 있는 책임도 실명으로 남지 않는다. 

 대신 ‘의중’이라는 이름으로 흐르고, 그 지시를 받은 이는 자신이 무엇을 요구받았는지 조차 밝히지 못한 채 물러난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봉건시대 권력 운영 방식이다. 공개 비판 대신, 비공개 지시. 당내 절차 대신, 개인적 압박을 가하며 등  뒤에서 움직인다.

 이재명 정부의 핵심실세라 불리우는 김 비서관은 단지 전달자였을까? 설령 그렇다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뜻을 공적 루트가 아닌 사적 경로를 통해 관철시켰다면, 그것은 명백한 권한 오용이자, 정당 정치 질서의 파괴다.  게다가, 강 후보자 본인의 공개사과나 입장표명도 없는 침묵도 정권의 의도와 맞닿아 있어 보인다. 

 정권은 반발을 원하지 않는다. 자발적 굴복과 조용한 퇴장을 선호한다. 그래야 책임도 없고, 논란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매번 "개인의 결정이었다"는 말로 포장된 정치적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이번 강 후보자의 물러남은 하나의 사퇴가 아니라, 정권이 정치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성을 갖게된 것이다.  

 조직은 권력자의 안목에 따라 정리되고, 공식 채널은 형식적인 장식품일 뿐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질문을 던지지 않을수 없다. 다음엔 누구 자리에서 대통령의 ‘의중’이 작동할 것인가. 그리고 언제까지 의중 정치, 책임 대신 침묵 통치를 허용할 것인가? <김창권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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