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틀러가 왜 6백만이나 되는 유대인을 살육 했는가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시원한 답을 찾지 못하였다. 히틀러는 아버지를 알지 못 한다. 너무 어려서 세상을 등졌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어머니는 가난한 과부로서 혼자서 어린 히틀러를 키워야 했다.
생계를 위해 동네에서 유대인이 장사하는 정육점의 직원으로 일을하며 간신히 지낼 정도였다. 그런데 이 정육점 주인이 바로 문제였다. 이 유대인은 히틀러의 어머니를 우습게 여기고 수시로 강간을 하며 월급이라고는 몇 푼어치도 안되는 돈으로, 그것도 말을 듣지 않으면 주지도 않았다.
히틀러의 어린 시절은 집에 오면 엄마가 항상 슬프게 눈물을 흘리며 우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히틀러는 이 모든 것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했다.
사건은 더 큰데서 터졌다. 히틀러는 어렸지만 이른바 예술가, 더 정확히는 미술가였다. 그림에 천재적인 소질이 있었다. 그래서 세계적인 화가가 되겠다는 것이 그의 유일한 꿈이었다. 자기가 그린 그림이 어머니와 생계를 돕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자기가 정성을 다하여 그린 그림 50점을 보퉁이에 싸들고 그림을 팔러 집을 나섰다. 그 당시에 이 그림들을 살만한 사람들은 돈많고 유복한 유대인들 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히틀러는 어느 부유한 유대인의 집을 찾아가서 그림을 팔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를 맞은 것은 무시무시하게 사나운 맹견이었다. 이 맹견은 히틀러를 보자마자 사정없이 히틀러의 다리를 물어버렸다. 이 상처는 히틀러가 죽을 때까지 함께 가야 하는 깊은 상처가 되었다.
그래서 히틀러는 그 맹견을 발로 찼다.
그랬더니 이제 막 임신한 소중한 개를 발로 찼다고 그 집 유대인 주인이 나와서 히틀러를 사정없이 때리고 그렇게 정성을 다하여 오랜시간 그렸던 히틀러의 그림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조각조각 찢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히틀러는 이 집 대문밖으로 마치 걸레처럼 내팽겨졌다.
히틀러는 그 순간 결심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유대인들은 이 지구상에서 단 한 놈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굳게 결심했다. 그리고 이 결심은 실제로 히틀러가 독일의 총통이 되었을 때 실제로 집행되었다.
"유대인의 피를 가지고 태어난 자는 단 한 명도 남기지 마라!" 히틀러는 마지막에 자살 하면서도 "나는 내가 목적한 일을 다 해냈다" 고 자랑스러워 하며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불쌍하고, 못나고, 허약하고, 가난하고, 머리 나쁘고, 배운 바 없고, 무능력한 우리나라 젊은이들과 노인들이 매년 15,000명이나 자살한다. 우리가 히틀러보다 나은점이 무엇이 있을까?
오늘 우리들 모두는 참으로 깊이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되돌아 보아야 하겠다.
오늘도 타인에게 일시적인 잘못함으로서 제 2의 히틀러를 만드는 일이 없도록 슬기롭고 지혜로운 목요일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총재 박철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