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이란 원래 시민의 숨통을 틔워주는 존재여야 한다. 가정이 무너질 때, 사업이 흔들릴 때, 돈이 돈을 벌지 못할 때, 그 손을 잡아주는 것이 금융의 사회적 책무였다.
그런데 요즘 시중은행들의 행태를 보면, 그 손이 돈을 건네주는 손이 아니라 국민의 호주머니를 터는 손이 되어버린 듯하다.
지난해 기준으로 주요 시중은행들의 예대마진은 3%를 훌쩍 넘었다. 대출금리는 6%를 넘나들고, 예금금리는 2% 안팎이다.
대출은 빠르게 올리고, 예금은 느긋하게 내린다. 여기에 신용등급이 낮으면 연 8~10%대 금리도 우습게 붙는다.
이쯤 되면 “은행이 아니라 사채업자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리고 그 비판은, 현실을 상당히 정직하게 반영한 말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런 수익 구조로 4대 시중은행이 역대급 실적 잔치를 벌였다는 점이다.
불황이라며 온 나라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와중에, 은행만은 천문학적인 순이익을 발표했다.
마치 국민이 흘린 눈물과 땀이 고스란히 배당금으로 증발해버린 듯한 씁쓸한 풍경이다.
그동안 금융당국과 정치권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둔감했던가.
정치권은 ‘금융공공성’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만, 정작 금융감독에는 손을 놓고 있었다.
은행들이 마치 담합하듯 똑같은 금리 정책을 유지해도, 이를 문제 삼는 정치인은 드물었다. ‘시장에 맡기자’는 말은 종종 무책임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이쯤 되면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은행은 누구를 위한 존재인가?
금융산업이 국민경제를 위한 공공 인프라라면, 이 정도의 예대마진을 내면서도 공공성을 방기하는 행태는 명백히 비정상을 넘어 범법에 가까울 정도다.
최소한의 금융윤리도 갖추지 못한 채, '시장 논리'라는 이름 아래 수조 원의 이익을 나눠 먹는 구조는 반드시 재설계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이같은 비정상적인 시중은행의 행태를 새 정부가 바로잡지 못한다면 중소 영세상인들은 물론 서민들로부터 큰 저항에 맞닥뜨리게 될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4대 시중은행을 향해 ‘당신들은 진정 누구의 돈으로 사는가’를 묻고, 그 돈이 향해야 할 곳이 어딘지를 구체적으로 되물어야 하는 시점이다.
예금자의 신뢰와 대출자의 절박함 사이에서 돈을 굴리는 것이 은행이라면, 그 둘 중 어느 쪽도 결코 배신해선 안 된다.
은행은 서민과 중소상인의 숨통을 죄는 손이 아니라, 숨을 불어넣는 손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금융당국과 은행 관계자들이 새삼 알았으면 한다.
김창권 대기자 ckckck1225@nvp.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