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사진=뉴시스 제공.

한때 글로벌 소매 대기업들이 잇따라 실패를 겪으며 ‘소매업의 무덤’으로 불리던 일본 시장이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5월 7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최근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들이 일본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며 전통적 유통 생태계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소매 및 전자상거래 시장은 고도로 폐쇄적이고 자국 중심적인 구조를 유지해 왔다. 복잡한 공급망, 충성도 높은 소비자, 보호적인 규제 환경은 현지 기업들—예컨대 이온, 유니클로, 롯데 마케팅사 등—이 시장을 장악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국산 제품 선호와 지정학적 긴장으로 인해 외국계 기업의 진입은 더욱 까다로웠다. 실제로 테스코, 월마트, 까르푸 같은 세계적 유통업체들이 일본 시장에서 모두 고배를 마신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중국 플랫폼의 등장은 이런 구조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핀둬둬 산하의 Temu와 시인(Shein)은 기존 유통가보다 90% 이상 저렴한 초저가 제품을 내세워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여기에 TikTok 역시 일본 온라인 쇼핑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며, 이는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들이 일본 소비시장에 더욱 깊숙이 침투할 조짐으로 읽힌다.

이들의 전략은 명확하다. 물가 상승으로 가계가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해 기존 소비 패턴을 재편하고 있다. 특히 브랜드 충성도가 약한 젊은 소비자층은 민족 브랜드보다 가격·편의를 중시하며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에 더욱 익숙해져 있다. 한때 품질 논란이 있었던 중국 제품들도 이제는 가격 대비 만족도 면에서 소비자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수준까지 개선됐다.

전자상거래 시장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일본은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진입 장벽이 높다. 롯데는 일본 내 온라인 매출의 약 3분의 1을 점유하고 있으며, 아마존재팬이나 야후쇼핑조차 시장에 안착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아마존은 물류, 고객 서비스, 문화 현지화에 막대한 투자를 했으며, 야후쇼핑은 현재 소프트뱅크의 자회사인 Z홀딩스가 운영을 맡고 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단 몇 달 만에 기존 업체들이 수십 년에 걸쳐 이룬 성과에 맞먹는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 비록 현재로서는 시장 점유율이나 제품 다양성 면에서 제한적이지만, 이번 변화는 전통적으로 가장 폐쇄적이던 일본 시장조차도 디지털 전환과 세대 변화, 경제 압박이라는 조합 앞에서는 변화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

저작권자 © 뉴스비전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