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룸 넥스트 도어〉는 2024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무려 18분간 기립박수를 받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나름 아름다운 색감과 세련된 구성으로 풀어내며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영화는 또 죽음을 말하되 그것이 장엄한 슬픔이 아닌 평화와 안식이 될 수 있는 과정을 제시한다. 미국 소설가 시그리드 누에스의 소설 ‘어떻게 지내요’를 각색한 작품으로 이 책의 프랑스어판 제목은 ‘당신의 고통은 무엇인가요’이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가 1942년에 쓴 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타인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썼을 때 시몬 베유는 자신의 모국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그 위대한 질문이 사뭇 다르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
이 영화는 말기암 판정을 받은 왕년의 종군기자 마사(틸다 스윈튼)가 오래된 친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잉그리드(줄리안 무어)에게 자신의 생애 마지막을 함께 해 줄 것을 부탁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주인공 마사와는 달리 예민하고 까다로운 성격의 잉그리드는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이내 친구의 결심을 존중하며 그녀의 곁에 머물게 된다. 마사는 고통스러운 치료 대신 “난 죽을 권리가 있어, 존엄을 지켜며 퇴장할래. 깨끗하고 깔끔하게.”라며 존엄있는 죽음을 간절하게 원한다.
죽음을 향한 깊이 있는 사색적 대화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존엄사’라고 하는 무거운 소재에 스페인 특유의 컬러를 입혀 처음부터 끝까지 밝고 경쾌하게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특히 빨강, 청록, 노랑의 아름다운 조합이 돋보이며 뉴욕 교외의 한적하고 근사한 장소에다 에드워드 호퍼의 ‘햇볕 쬐는 사람들’이란 상징적인 작품마저 벽 한 켠에 걸려있는 숲속 별장에서 벌어지는 주인공의 마지막 여정을 격조있게 담아내고 있다.
이 영화는 또 삶의 의미를 다각도로 풀어내며 ‘삶을 찬양하라’는 메시지도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와 함께 영화는 죽음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때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지를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는 마지막에 결말을 통해 딸 미셀을 등장시켜 남겨진 자의 생각과 시선을 통해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실제 동갑인 틸다 스윈튼과 줄리안 무어의 열연은 인간의 존엄과 친구 사이의 신뢰와 우정을 묵시적으로 표현하며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잊지 못할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관객에게 질문을 남기는 영화

영화의 주요 장면에서 사용된 에드워드 엘가의 명곡 ‘사랑의 인사’ 또한 두 주인공의 우정과 감정을 한층 깊이 있게 표현하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는 눈이 세 번 내린다. 그리고 세 번의 詩(시)가 흘러나온다. 한 번은 눈 내리는 저녁에 창밖의 도심을 바라보며 마사의 입을 통해서, 또 한 번은 두 주인공이 함께 보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더블린 사람들’을 각색한 존 휴스톤 감독의 유작 〈죽은 사람들〉이란 영화의 나레이션을 통해, 마지막은 이별 여행을 마친 눈 내리는 저녁 숲속의 별장에서 잉그리드로부터.
어렴풋이 눈이 내린다.
쓸쓸한 교회 마당에도
온 우주를 지나
아스라이 내린다.
그들의 최후의 종말처럼
모든 산 者와
죽은 者 위로
예술은 삶을 위로하는 것을 넘어
죽음을 향한 공포를 다독인다.
“관객에게 답을 주는 영화는 극장에서 끝날 것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상영이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한다.”
이란을 대표하는 아스가르 파르하디(ASGHAR FARHADI) 감독의 글귀가 영화의 엔딩과 더불어 깊은 감흥을 남기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은 아닌 듯 싶다.
김창권 대기자 ckckck1225@nvp.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