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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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제 4대 임금이셨던 세종대왕은 고구려의 제 19대 광개토대왕과 함께 "대왕(大王)"의 극 존칭이 붙는 임금이십니다.

"대왕"이라는 존칭은 재임 중에 뚜렷한 업적을 남기신 임금에게만 사후에 후손들이 공경의 뜻을 담아 붙이는데 그 예가 흔치 않습니다.

세종대왕은 조선 건국(1392년) 직후인 1397년도에 태조 이성계의  다섯 째 아들이자 제 3대 임금인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412년 충녕대군에 봉(封)해졌고 1418년 6월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두 달 후인 8월 10일, 태종의 양위로 조선의 제 4대 임금에 즉위하게 됩니다.

원래 왕위 계승 순서는 태종의 장남인 양녕대군이지만 그가 세자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련의 불미스런 사건에 연루되어 태종이 심경변화를 일으켰고 결국은 충녕대군이 왕의 자리를 물려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세종은 1418년부터 1450년까지 32년을 재임하는 동안 수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유교정치를 중시하면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기에 이릅니다.

정치가 안정되고 경제와 사회, 문화 등이 전반적으로 기틀을 다지게 되었던 시기가 세종대왕 때였습니다.

집현전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였고, 의례, 제도를 정비하였으며 방대한 편찬사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훈민정음의 창제는 세종대왕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농업 및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고, 의약과 음악, 법제의 정비 또한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대왕께서는 국토의 확장에도 공이 큰 분이십니다.

15세기 당시에는 영토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북쪽의 산간지역 대부분이 주인 없는 땅이었는데 대왕께서는 4군 6진으로 통칭되는 북방 지역의 영토를 정벌하여 우리나라 국토로 편입시켰는데 당시의 경계가 현재의 한.중 국경의 원형으로 거의 그대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대왕께서는 다방면으로 국가를 위해 애쓰신 열정적인 분이셨는데 건강만큼은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세종은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고 육식을 즐김으로써 단 한끼라도 밥상에 고기가 없으면 수저를 들지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고기를 하도 좋아해서 어떤 날은 밤에 몰래 부엌으로 들어가서 고기를 찾다가 하인들에게 들키기도 했다는 에피소드가 조선왕조실록에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나친 육식이 세종의 건강을 해친 한 원인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집권 후반기에 급속히 건강이 악화되었음에도 세종의 주변에서 보좌한 관리들이 뛰어났던 까닭에 국정은 안정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당시 세종을 보좌하던 황희 정승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재상으로 알려지신 분이고, 최윤덕(崔潤德), 신개(申槪), 하연(河演) 등의 쟁쟁한 인물들이 오늘날까지 칭송받고 있습니다.

세종은 54세에 세상을 하직하기까지 일에만 몰두하였던 것 또한 건강을 악화시킨 큰 원인으로 보이는데 말년에 그는 온 몸에 종기가 가득했고, 당뇨와 건습(蹇濕:고관절의 이상으로 생기는 염증), 안질(眼疾)에다 임질 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질병들에 노출된 종합병원이었습니다.

대식가이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육식을 즐긴 식습관과 만성피로가 그의 건강을 악화시킨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세종은 18남 4녀의 자녀를 두셨는데 그가 1450년 승하하시면서 조선의 제 5대 임금인 첫째 아들 문종에게 왕위가 승계됩니다.

그러나 문종은 체구는 컸으되 몸이 쇠약하여 즉위 2년 만인 1452년에 사망합니다.

배대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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