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사진=뉴시스 제공.

인간만이 약속을 하고 삽니다. 

이 세상에 숨을 쉬고 사는 수많은 동물 중 인간만이 약속을 하고 산다고 합니다.

사람 다음으로 지능을 가졌다는 개나 원숭이도 미리 약속하고 애인을 만나러 가지 않습니다. 

인간이 사는데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먹는 것[食]"과 "믿는 것[信]"입니다.

"먹는 것"과 "믿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대부분은 식(食)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공자(孔子, 孔夫子; BC551 ~BC479, 魯)는 신(信)을 앞 세웠습니다. 믿음이 깨어지면 그 사회의 근간이 흔들립니다. 

여기서 우리는 약속을 지키고 세상을 떠난 한 여가수의 이야기를 돌아보면서 믿음의 중요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애리수(李愛利秀, 李普全; 1911~2009)” 라는 가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1928년 단성사에서 '황성옛터'를 처음 불렀습니다.

여러 곡을 히트시키며 인기를 한 몸에 받은 미모의 가수였습니다. 한참 인기 절정에 있을 때 그녀는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녀가 자취를 감추자 사망설까지 돌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녀에 대한 기억은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연 뒤에 숨어있는 내막은 ‘약속’이라는 두 글자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배동필씨라는 연세대학생과 사랑에 빠져서 결혼을 약속하고 시부모 앞에 섰는데, 시댁에서는 가수라는 이유로 결혼을 완강하게 반대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살소동까지 벌였지만 시댁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시아버지와 굳은 약속을 하고 나서야 결혼을 허락받을 수 있었습니다. 일체 가수라는 사실을 숨기고 향후 가수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결혼 생활 2년 후에 그의 시아버지는 소천하셨습니다. 그 때 남편이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가수활동을 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애리수는 거절했습니다. 돌아가셨지만 "약속은 약속" 이라고 그녀는 평생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98세가 되어서 그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고 그 이듬해 99세로 타계하였습니다.

그녀의 자녀들도 어머니가 가수였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우직하리만큼 시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킨 그녀의 약속을 오늘날의 세대 중 특히 정치인들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안창호(安昌浩, 島山; 187~1938) 선생이 독립운동을 할 때의 일입니다. 그는 친척집 어린이에게 내일 모레 과자를 사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과자 봉지를 사들고 어린이를 찾아가는데 일경이 미행을 했습니다.

그는 일경이 미행하는 것을 알고도 어린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친척집에 갔다가 잡혀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고, 결국 옥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우직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정직한 정신으로 독립 운동을 하였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살아있습니다.

사람은 살아있을 때 어떤 감투를 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정신으로 살았느냐가 더 중요하고 그에 따른 평가가 내려집니다.

인간만이 약속을 하고 삽니다.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 서로의 불신이 깊어지고 사회는 병이 깊어집니다. 한국 사람의 80%가 타인을 못 믿는다는 앙케이트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OECD국가 중 최고의 수치라고 합니다.

"내가 어려울 때 의지할 곳이 있는가?"의 물음에 OECD 국가중 한국 사람이 최하위로 조사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많은 책임은 국가의 지도자층과 정치인들에게 있습니다.

높은 사람이 식언(食言)을 하면 모방 심리현상에 의해서 서민들도 따라서 거짓말을 하면서 죄의식을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의 정치하는 인간들! 거짓말을 밥 먹 듯하는 인간들이여.이제라도 정신차려서 한 말에 책임을 지고 약속을 지켜야 됩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습니다.

최원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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