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사진=뉴시스 제공.

중세 시대 남미의 최강국이었던 잉카제국의 몰락한 역사를 더듬습니다.

우리의 옛 속담에 "아무리 배가 고파도 씨나락은 먹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12C 초, 만코 카팍(Manco Capac)의 아들 신치 로카(Sinch Roca)가 그의 여동생 마마 쿠라(Mama Kura)를 왕비로 삼으면서 잉카제국은 역사에 등장합니다.

로카 황제의 손자인 마이타 카팍(Mayta Capac) 시대에 영토가 크게 확장되었고, 제 9대 황제인 파차쿠티 유판키(Pachacuti Yupanqui 1438~1471) 시대에는 인구가 1,100만이 넘는 대 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16C 초에는 안데스산맥에서 태평양 연안에 이르기까지 지배 면적이 100만 km²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잉카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의사를 자유롭게 전달하거나 기록할 수 있는 문자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키푸(quipu)라는 일종의 노끈을 사용했는데 결승문자(結繩文字)로 일컫어지는 이 도구의 매듭과 색깔 등으로 의사를 전달하거나 표시했다고 전합니다.

그들은 동물의 힘을 빌리지 않고 도로와 계곡을 잇는 적교*(吊橋)와, 용수로, 성전, 궁전, 신전 등의 거대한 건축물을 세웠습니다.

한편으로 잉카인들의 의학수준은 상당히 발달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안데스산맥의 계곡에서 생산되는 품질좋은 약재를 활용했고,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등 외과적 수술까지도 시술했다는 흔적까지 남아있으며 미라의 제작기술 또한 매우 뛰어났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잉카인들은 안데스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금을 이용하여 여러 생활용품과 장식품을 제조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던 잉카인들에게 악몽이 다가온 것은 1530년 무렵이었습니다.

정복자인 프란시스코 피자로(Francisco Pizarro, 1475~1541)가 당시로서는 신무기였던 화승총으로 무장한 2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잉카 제국에 침입하여 황제를 시해하고 제국을 멸망시키고 말았습니다.

잉카가 멸망한 후 황금도시에 대한 소문이 퍼지게 되는데 에스파냐군이 옹립한 꼭두각시였던 마지막 황제 아마루가 많은 금과 보물을 잉카의 마지막 수도였던 빌카밤바 어딘가에 숨겨 놓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복자들은 빌카밤바를 찾으려 했지만 위치를 찾아내지 못했는데 에스파냐군도 소문을 쫓아 빌카밤바를 찾으려고 아마존 밀림으로 들어갔지만 대부분 행방이 묘연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다가 4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인 1909년, 미국 예일대학교의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 1895~1956) 박사가 빌카밤바를 찾으려 나섰다가 실패한 후 1911년, 재도전에 성공함으로써 빌카밤바는 드디어 문명세계에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유적이 "마추픽추"였는데 잉카의 수도 쿠스코에서 아마존의 원류인 우르밤바강을 따라 북서쪽 114km 지점인 해발 2280m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추픽추는 에스파냐군도 끝내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15~6세기 당시 마추픽추에서는 계단식 밭에서 감자와 옥수수, 코카잎을 재배했고, 가축도 길렀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잉카인들은 석재를 자유자재로 활용해던 것으로 밝혀졌는데 물이 귀한 고원지대에서 상수도와 하수도 시설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입니다.

학자들은 태양신의 후예로 숭배받던 잉카제국의 제 9대 황제인 "세상의 개혁자" <파차쿠텍>이 거대한 도시인 마추픽추를 건설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장엄하면서도 훌륭했던 잉카제국은 16C 초반에 에스파냐군이 침략하여 잉카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살륙함으로써 잉카제국은 쇠퇴해졌는데 간간이 잉카인들의 저항이 있었지만 페루 총독인 프란시스코 데틀레도가 실권을 잃은 이름뿐인 황제였던 아마루를 공격하여 생포한 후 처형함으로써 잉카제국은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으니 그 때가 1572년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5000년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 국가입니다.

우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5세기 초 광개토대왕 시대의 한 순간을 제외하면 늘 외침(外侵)의 연속이었습니다.

대륙의 한족(漢族)을 비롯하여 여진족(女眞族), 몽골족(蒙古族)에다 왜(倭), 그리고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주변국의 침입과 침략으로 나라를 통째로 빼앗겨 고통을 당한 적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은 잡초같은 근성으로 꿋꿋이 살아남아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근본 이유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애국애족정신을 가진 선열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차승민 기자 smcha@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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