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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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지나고 정월 대보름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예로부터 정월 대보름날 달님에게 자신의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대보름날 밤에는 마을 사람들이 동네 뒷산으로 올라가서 달집에 불을 질러놓고 달을 향해 소원을 빌었습니다.

정월 대보름날이 큰 명절이 된 것은 신라의 21대 임금이었던 소지왕(炤知王) 때 부터였다고 전합니다.

삼국유사 권(卷) 1 기이(紀異) 편에 정월 대보름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소지왕이 정월 대보름날을 맞아 경주 남산의 천천정(天泉亭)에서 산책을 하고 있는데 쥐와 까마귀가 왕에게 다가옵니다.

쥐가 왕에게 까마귀를 쫓아가 보라고 아룁니다.

왕은 시종에게 까마귀를 쫓아가 보라고 시켰습니다.

한참을 따라가니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봉투 하나를 건네면서 왕에게 전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시종으로부터 봉투를 건네받은 왕은 봉투에 씌인 글을 읽어보면서 움찔했습니다.

봉투에는 "이 봉투를 열어보면 2명이 죽고 안 열어보면 1명이 죽을 것"이라고 씌여 있었습니다.

왕이 봉투를 열었더니 "사금갑(射琴匣)"이라는 글이 보였습니다.

거문고 집을 쏘라는 뜻이었습니다.

왕이 활을 들어 시위를 당깁니다.

비명 소리가 들렸고 신하들이 거문고 집을 열어보니 왕비와 승려가 간음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승려는 왕비를 꼬득여 반역을 꾀하고 있었음이 밝혀져 가담했던 무리들이 소탕되었지요.

소지왕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까마귀에게 보답코자 정월 보름날을 오기일(烏忌日:까마귀 제삿날)이라 명하고 약밥과 오곡밥을 지어서 제사를 지내게 합니다.

이 때부터 정월 대보름이 명절로 되었다고 전해집니다만 그 이전에도 우리 나라에는 정월 대보름이 명절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정월 대보름은 설날과 달리 가정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마을 단위로 치렀습니다.

뒷동산에 올라가 나무를 쌓아 달집을 만든 후 불을 질러놓고 동네 사람들이 달맞이 행사를 벌입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의 소원을 빌지요.

소망이나 소원은 간절히 빌면 이루어집니다.

이런 풍습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배대열 칼럼니스트 BDYTYY@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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