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사진=뉴시스 제공.

고개는 기본적으로 높은 산을 넘어가는 것이기에 험준한 길이 대부분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중에도 험한 시기를 만나면 비슷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사전에서는 고개의 유의어로 "고비"라는 단어를 제시합니다.

굳이 한자어로 표시한다면 고비는 "苦悲"로 써야할 듯 싶습니다.

"괴로움과 슬픔"이라고 의역이 가능합니다.

고개나 고비는 인생에서 어려운 시기를 넘어갈 때 비유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한 것이어서 의미를 곱씹게 합니다.

우리나라에 보리가 전래된 시기는 대략적으로 기원 전 1세기 쯤으로 추정합니다.

중국으로부터 들어왔는데 육로를 통한 북부지방으로의 유입설과 해로를 통한 남부지방 유입설이 있지만 오늘 글에서는 별로 중요한 사안이 아니어서 생략합니다.

197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식량자원으로서 보리가 차지하는 위상은 대단했습니다.

통상 보리는 벼를 수확한 후인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파종을 합니다.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고 자란 보리는 5월 하순에서 6월 중순 무렵에 수확하게 됩니다.

그런데 보통 농가는 음력으로 3~4월 경에 추곡(벼)이 다 떨어지는 시기입니다.

양식은 떨어졌는데 하곡(夏穀, 보리)은 아직 여물기 전이어서 서민들은 속절없이 굶어야 했습니다.

보리에 여물이 차야 일부라도 수확해서 먹을 터인데 보리는 안 익었고, 배는 고프고...

그 당시 보리가 익기를 기다리다가 굶어죽는 이들이 허다했었다고 전합니다.

그 시절, 보리가 익을 때까지의 어려운 시기를 우리 선조들은 "맥령(麥嶺, 보릿고개)"이라고 불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넘기 힘든 고개는 지구 상에서 제일 높고 험하다는 캐라코람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높은 금패령도 아니었습니다.

그 어떤 고개보다 넘기 힘든 고개는 다름아닌 "보릿고개" 였습니다.

올해 예순 여섯을 맞는 필자  또래의 세대들은 "보릿고개"를 넘어왔던 애닯은 기억들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근래에는 보리가 건강식품으로 재조명되면서 대중들로부터 약간의 조명을 받고는 있지만 아직 밀이나 쌀에 비해 식량자원으로서의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현대인들이 고혈압이나 당뇨병, 뇌졸중, 동맥경화, 암, 비만 등 난치병에 노출되는 중요한 원인은 동물성 지방과 밀가루, 설탕 등을 과다하게 섭취하는 데 있다고 판단합니다.

대책없이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나라가 난치병으로 뿌리째 흔들릴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엄습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대안이 바로 보리입니다.

보리에는 식이섬유가 밀가루에 비해 5~10배, 쌀 보다는 25배에서 50배 정도 함유되어 있습니다.

또한 칼슘은 쌀에 비해 8~10배, 철분도 5배 이상 들어 있습니다.

특히 거의 모든 성인병의 원인 물질인 콜레스테롤을 녹여 없애는 베타글루칸은 보리에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음으로써 근래에 들어서 보리가 수퍼푸드로 인식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베타글루칸은 일종의 식이섬유인데 배변을 용이하게 하고 다이어트를 도와주며 공해와 패스트푸드,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산성체질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생활고로 시달렸던 그 시절을 '보릿고개'로 일컫었는데, 이제는 그 보리가 우리의 건강을 챙기는 중요한 식품 원료가 된 것입니다.

배대열 칼럼니스트
유튜브 "배대열의 세상만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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