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안 우리 사회에 ‘아나바다’ 열풍이 불었다. 물건을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기’하면서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자는 운동이다.
파는 사람은 필요 없는 물건으로 돈을 벌 수 있으니 좋고, 사는 사람은 필요한 물건을 싼값에 살 수 있으니 좋은 개념이다. 이에 나에게는 필요 없지만 아직 쓸 만한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싼 값에 파는‘아나바다 장터'도 생겨났다.
과거에는 체면을 생각했다면 이제는 실속형 삶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MZ세대는 개성이 더욱 강해 자기만족형 삶을 구가하는 경향이 짙다.
한편 핵가족 시대와 ‘일인 경제’ 시대로 인한 가구 수 감소, 물가 상승은 사람들을 영악하게 만들었다. 이에 건전한 소비와 절제라는 개념에서 새로운 인식을 불러 일으켰다. 이른바 ‘소식좌(적게 먹는 사람)’ 열풍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며 일인 소비 활동을 하는 추세와 환경오염 이슈도 소비 트렌드에 일조를 하고 있다.
그야말로 '일인(一人)'과 경제를 뜻하는 영어 '이코노미(economy)'가 합쳐서 만들어진 단어인 "일코노미" 개념이 부상되면서 ‘절반(반쪽) 분량’의 소비절약형 경제 개념이 부각되고 있다. 방만한 식문화 대신 합리적 소비에 대한 갈구가 커지며 기업도 기민하게 대처하고 있다.
급기야 간판에 ‘0.5인분 전문음식점’과 기존 용량의 절반가량인 ‘와인 반병’, 밥양을 절반으로 줄인 도시락 브랜드가 출시되었고 초미니 도시락에 ‘반 인분 메뉴’까지 등장했다. 이른바 절반문화와 함께 소식(小食) 경제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과거 보릿고개 시대를 지내온 노장년층에서는 왠지 0.5인분은 1인분의 절반으로 서운하면서도 야속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과잉 체중과 성인병 만연으로 채움 보다는 비움을 더욱 중요시 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부자는 됐고, 건강하게 잘사는 법’은 이젠 ‘살기 위하여 먹는 것’이 아니고 ‘건강하게 살기 위하여 먹는 것’라는 개념에서 내실 있게 먹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채움에서 오는 포만감 보다는 비움에서 오는 안락감을 더욱 추구하고 있다. 이에 식탐의 욕구를 감량(減量)하는 것이 웰빙과 웰다잉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아울러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문화와 소확행 등장은 어쩌면 현명한 행복 추구일 것이라는 인식도 한몫을 하고 있다.
'한번 사는 인생 건강하고 알차게 즐기자'는 욜로와 건전한 소비행태를 통해 '나만의 작지만 소중한 행복을 찾자'는 소확행 등장 배경과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은 ‘존천리 거인욕’(存天理去人欲)을 강조했다. ‘사욕을 멀리하고 타고난 본성을 잘 보존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욕망을 잘 조절하라는 의미이다.
내적 평화를 위해서는‘자기 만족’을 얻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한 것이다. 만족(滿足)의 족(足)자가 발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물이 발목까지만 차면 만족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과도한 욕심을 내서 화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순자는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면서 그 욕망을 제어하는 게 예(禮)라고 했다. 주역에서도 ‘부귀영달이 극에 달하면 쇠퇴’(항룡유회·亢龍有悔)할 수 있으니 겸양하도록 했다.
공자는 물을 중간쯤 채우면 반듯하게 서고 가득 채우면 옆으로 넘어가는 그릇인 유좌를 보고, ‘세상에 어떤 물건인들 가득 차고서도 넘어지지 않는 것이 있겠느냐’고 했다.
결국 진정한 포만은 완전히 채우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채움에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소식경제는 국민 건강과 절제를 통한 나눔과 기후환경보호 차원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다.
인간의 오육(五慾)은 식욕, 수면욕, 성욕, 재물욕, 명예욕이다. 결국 색(色). 냄새(香),소리(聲), 맛(味), 느낌(觸), 생각(意)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런데 식욕은 소리는 빼고는 전부 인간의 감각을 건드리고 있으니 절제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포부(抱負)는 크게 가지되 포만(飽滿)은 금물이다. 넘치게 먹고 과하면 탈이 나는데 당장 먹는 입맛에 취해 과한 것이 바로 자기모순이다.
분명 시간이 지나면 후회할 텐데 당장 참고 절제 하는 것은 어렵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고 인생은 미완성이라고 하나 보다.
이상기 칼럼니스트 sgrhee21@nvp.co.kr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