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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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카타르 월드컵도 이젠 서서히 저물어 간다. 이번 대회를 통해 우리는 세계 최강의 벽이 높다는 점을 실감했지만, 동시에 한국 축구의 밝은 미래도 쏘아 올렸다.

태극전사들은 12년 만에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세계의 강호를 상대로 승리를 따내기는 어렵다는 건 알았지만, 가슴에는 긍지와 자신감이 피어났다. 최상의 결과는 아니었지만, 절반의 성공 그 이상이었다. 승패에만 목숨 걸고 허둥지둥 하던 축구에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즐기는 축제가 되었다.

세계 어떤 강팀을 만나도 주눅이 들지 않는 자신감, 한국 축구 체질을 바꾼 ‘생각하는 축구’와 조직적인 '빌드업', 역전 드라마와 강인한 투지로 발현된 '중꺾마' 정신, ‘MZ 언더도그'의 무서운 반란과 20대 초중반 '영건'들의 활약상이 이어졌다.  '젔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야말로 태극전사들은 '우리의 축구'를 펼쳤고, 국민들은 그 '성장'에 주목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소중했던 점은 축구가 일깨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짜릿한 행복감이었다.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었던 선수와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고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혼연일체가 된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 결집 그 자체였다.

마치 패색이 짙은 경기였지만 추운 엄동설한 추위 속 거리응원에서도 누구 하나 자리를 뜨는 팬이 없었다. 선수와 응원단은 즐겁게 하나 되어 ‘벽’을 허물었다  패색이 짙어질수록 모두가 하나가 되어 광장의 함성과 안방에서 소리 없는 외침은 커져만 갔다. 하지만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승리를 향한 다그침이 아니었다. 지더라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는 투혼에 보내는 박수였다.

외신들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 한국 선수들을 격려했다. 특히 안와골절 부상에도 ‘배트맨’으로 변신한 손흥민의 빛나는 희생은 아름다웠다. 이와 관련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에서 같이 한솥밥을 먹는 히샤를리송도 손흥민 선수를 포옹하며 “너는 영웅…힘들게 싸워온 것 알아”라고 격려했다.

월드컵 한 게임 연속 2골을 기록한‘꽃미남’ 조규성,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이끈 ‘돌풍의 주인공’ 이강인, 세계 최고 골키퍼를 상대로 호쾌한 중거리포를 성공시킨 백승호의 반란적인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그야말로 대표팀의 MG 세대 반란이었다. 미래 한국 축구를 연상케하는 세대교체의 가능성도 확인되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톡톡 튀는 태극전사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카타르 현지에서 주가(몸값) 역시 뛰었다. 조규성·이강인·김민재에게 관심이 쏠리면서 유명 구단의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금번 카타르 월드컵은 이변 속촐, 참가팀의 국제적 평준화, 유명선수의 의존도가 낮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대표팀은 FIFA 랭킹에 대한 선입관념과 불가항력적 사고 탈피, 일취월장한 경기력, 선수와 국민간의 이심전심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어냈다. 

비록 월드컵 축구대표팀의 여정은 여기까지였지만 희망은 지금부터다. 수많은 네티즌들은 ‘결과보다 과정’이라는 해시태그 릴레이로 찬사와 격려를 보내주었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이 우리를 새롭게 기다리고 있다.

중꺾마! 그야말로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다. 끝은 새로운 처음으로 이어진다. 졌다고 영원히 진 것은 아니다. 패배는 일시적인 걸림돌이었지만 승리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중꺾마’로 우리는 보다 성숙된 모습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석패에 대한 아픔을 잊고 수렁에서 새 꿈을 찾는 긍정과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

이젠 벤투호의 카타르 월드컵은 막을 내렸다. 세상에 패배하지 않는 팀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도 지금 8강 도전에 좌절을 겪었다. 이 시점에 중요한 것은 우리의 어떤 역량으로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성경 잠언에서는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다"고 했다. 충분한 세월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목전의 결과(승리)에 대한 기대 대신 준비성 있는 부지런함으로 과정(경기력)에 치중하여야 한다.

다음 월드컵을 위해 차분한 마음으로 또 다른 4년을 준비해야 한다. 3력' 추구다. 개인 기력, 당당한 담력, 경기력을 길러야 한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앞에서' 시 구절처럼 말이다. "국화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고, 천둥이 치고, 무서리가 내리는 과정”처럼 엄청난 준비와 인고의 세월이 요구되고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과거 전통과 역사가 바탕이 된 후에 새로운 지식이 습득되어야 제대로 된 앎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벤투호의 장점은 그대로 살리고 약점은 보강해야 한다.

카타르 월드컵은 우리에게 세계무대의 벽을 정확히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한 한국 축구였다. 그래서 재충전과 혁신을 통해 우리의 더 높은 도전(꿈)은 계속된다.  

이상기 칼럼니스트 sgrhee21@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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