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사진=뉴시스 제공.

이국종 교수가 내일 전주 중화산동의 한국예술아카데미에서 특강 계획에 있습니다.

이국종교수는 대한민국 의사이자 우리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중 한 분 입니다.

아주대학교 외상연구소장으로 외상및 총상부문에서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최고의 의료진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총상입은 환자는 거의 이국종교수에게 치료를 받습니다. 

열악한 국내 응급시스템의 현실을 국회및 보건복지부에 알리며 획기적으로 응급 환경을 개선시킨 훌륭한 외과의사 선생님이십니다. 

국가유공자인 아버지는 6.25전쟁 중 지뢰를 밟아 한쪽 눈을 잃고 팔과 다리에 중상을 입은 2급 국가 유공자였습니다. 

이렇게 장애를 가진 아버지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것이 싫어 중학교때까지 학교에 국가유공자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동사무소에서 상이 군인에게 지급하는 밀가루 푸대를 머리에 이고 오다가 그만 땅바닥에 쏟고 말았습니다. 

사람들 눈을 피해 밤에 다니다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던 것 입니다. 

어린 이국종은 어머니와 밀가루를 주워 담으면서 순간 가슴이 울컥 함을 느꼈습니다.

내가 어른이되면 아픈 사람에게 만큼은 절대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교수는 EBS "명의"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방송은 아주대병원의 중증외상쎈터의 긴박한 순간 순간을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당시 시한부 6개월 선고를 받았던 간암 말기환자가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실로 실려왔습니다.

이 환자는 얼마남지 않은 시간을 아내와 보내기 위하여 이별여행을 떠나다 사고를 당했던 것 입니다. 

환자는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을거두었고 이교수는 가족들을 향하여 "연신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후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의사로서 환자를 살리지 못한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배려가 서려있었습니다. 

이교수는 언제든지 수술실로 달려가기 위하여 기자회견장에도 수술모를 쓰고 온다고 합니다.

수술에 방해될까봐 손목시계 금속 부분엔 금속면 붕대 밴드가 칭칭 감겨있습니다. 

이교수는 현재 얼굴 한쪽면에 마비가오고 왼쪽 눈은 과로와 스트레스로 거의 실명 상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국종교수 하면 가장 떠오른는 기억이 2011년 1월 아덴만 여명작전에서 해적이 쏜 총탄에 심각한 총상을 입어 목숨이 위태로운 석해균 선장을 구하는 것 이었습니다. 

2011년 1월15일 1만1천톤의 대형 화물선인 삼호주얼리호에는 선원 21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란에서 화물을 싣고 스리랑카로 가던 배는 아라비아 해에서 해적의 공격을 받았고 석해균 선장은 급히 선원들을 대피 시켰으나 해적들이 엔진을끄고 수색에 들어가 대피했던 선원들이 모두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해적들은 몇달 전에도 그 회사의 삼호드림호를 납치하여 100억을 넘게 받아내어 재미를 보았던 인물들이었기에 대한민국의 청해부대는 벼르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곧바로 청해부대를 파견하였고 작전에 투입하였습니다. 

당시 석해균선장은 기지를 발휘하여 컴퓨터로 바둑게임을 하겠다고 한 뒤 우리 해군에 긴급 상황을 전했습니다. 

"해적 10명이상 AK소총으로 무장 소말리아로 이동중" 이라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우리 해군은 소말리아에 도착하는 걸 늦춰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에 석 선장은 해적들에게 "너희가 엔진을 정지시킬 때 배가 고장이 났다"며 못 믿겠으면 직접 테스트를 해보라고 고치는 척하며 시간을 벌었습니다. 

당시 작전을 위해 출정한 해군 최영 함에는 우리군 300명이 타고 있었고 그중 30명의 UDT 대원이 가장 먼저 주얼리호에 접근하였습니다.

그런데 숨어 있던 해적들이 총을쏘기 시작하였고 당시 UDT 대장이 총에 맞아 부득이 철수를 하였고 이후 김규환대위가 작전을 이끌었습니다. 

당시 해군은 "부산 갈매기" 노래를 크게 틀어 공격 신호를 보냈고 최영함과 헬기에서 일제히 총격을 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같이 시작된 아덴만 여명 작전은 피랍 6일만에 선원들이 구조되었고 석해균 선장은 흥분한 해적들에게 6발의 총을 맞은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석해균 선장은 " 해적들이 나를 "캡틴 캡틴"하며 찾고 다녔는데 마치 저승사자 목소리 같았고 총을 탕하고 맞은 뒤로는 의식을 잃고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이국종 교수는 급히 오만에 파견되었습니다.

오만 대학병원에서 1차수술을 받았지만 석해균 선장은 급히 국내로 이송하지 않으면 곧 사망할 것 이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오만의 열악한 의료시설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급히 에어 엠블런스를 이용하여 한국으로 이송할 것을 국내에 타진했습니다.

에어 엠블런스는 모든 의료시설을 갖춘 응급 비행기를 말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석해균 선장의 후송에 이용하려는 에어 엠블런스는 전세 비용이 약 38만달러 우리 원화로는 4억8천여만원의 비용이 문제였습니다. 

긴박한 상황속에서 한국의 정부측과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자 이국종교수는 " 내 돈이라도 낼 테니 신속히 국내로 이송을 해야 합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간급히 스위스 에어 엠블런스를 빌려 한국으로 향하였습니다. 

청해부대의 헬기로는 이송중에 사망하고 말것이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스위스 에어 엠블런스는 임대는 이국종교수 이름으로 대여하되 외교부가 지급 보증을 서는 것으로 상황이 정리되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모든 외상외과는 대부분 적자이지만 급박한 상황속에서는 꼭 필요한 분야가 외과분야입니다. 

사실 의대생 중에서도 외과선택을 기피하고 편하고 돈벌이가 좋은 전공 과목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아주 많습니다. 

외과인 경우에는 거의수술이나 처치시에 환자에 피를 볼 수 밖에 없기때문에 외과의사는 그 스트레스를 풀기위하여 주로 술을 잘 마신다 합니다. 

석해균 선장을 한국으로 이송한 후 이국종교수의 수술은 아주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석해균 선장은 한국에서 3차 수술을 받고 5일뒤에 의식을 찾았습니다. 

석 선장이 눈을뜨니 여기는" 한국입니다"라는 현수막이 병실에 보였고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참여했던 대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해 하였습니다. 

약 9개월만에 선장이 두다리로 걸어서 퇴원 하면서 "아덴만 여명작전" 은 성공이었고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석해균선장의 회복과 함께 모든 관심은 이국종교수에게 쏠렸습니다.

이 사건으로 이국종교수는 국민포장을 받았고 석해균선장은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이국종 교수와 아주대학교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2017년 11월 북한군 병사  오청성씨(24살) 가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의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하는 도중 북한측 초소로부터 총격을 받아 5군데의 총상을 입고 UN사 헬기를 통하여 아주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습니다. 

이국종교수는 거의 사망직전의 북한군 병사를 집도하였고 총상으로 손상된 장기들이 크게 훼손되어 복강과 다른 장기들까지 오염되어 상태가 매우 안좋다고 1차수술 후 발표하였습니다. 

이교수는 석해균선장과 마찬가지로 이 귀순병에 대해서도 "자유 대한민국이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피투성이를 뒤집어쓰며 최선을 다하여 수술에 임하였습니다. 

드디어 귀순병사가 의식을 되찾았고 생명의 은인인 이국종교수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전하였습니다. 

이국종 교수에 의해서 이 사회에 많은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환자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사고 발생 후 최소한의 시간을 골드아워라 합니다. 

중증 외상환자의 경우 신고부터 최초 응급실 이송까지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하는 환자가 없도록 119 구급 상황관리 쎈터의 개선이 필요했던 것 입니다. 

미국에서는 인명구조가 발생하면 그 과정에서 발생되는 민원이나 재산상 손해등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동일한 상황이 벌어지면 아주 난리가 납니다.

환자를 싣고 병원에 가려면 수십분씩 지연이 되기도하고 심지어는 엠블런스가 요란한 소리를 내어도 길을 비켜주지 않는 얌체 운전자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교통사고로만 연간 4500명이 사망하는데 중상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2만명이 훨씬 넘습니다. 

작년에 우리 지역인 전주 동산동에서 두살배기 남자아이와 외할머니가 후진하던 차량에 치이는 사고가 있었고 곧바로 전북대병원에 이송되었습니다. 

이 어린이는 골반이 심각하게 골절되었고 전북대 응급실 도착 22분만에 의료진은 다른 병원에 이송을 선택하였고 다른 지역의 대학병원과 국립중앙의료원등 12곳에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이 아이를 치료하겠다는 병원은 없었습니다. 

사건 발생 7시간만에 아주대학교 외상쎈터에 도착했지만 아이가 수혈을 받기까지는 3시간이 걸린 후였습니다. 

이송도중 누구하나 이 작은 아이에게 피 한방울 수혈 해 주지 않았고 3번이나 심정지를 겪으며 수술을 하였으나 다음 날 새벽 숨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19 구급대가 환자를 구조한다 해도 치료 해 주겠다는 병원을 찾아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의 약 245분 4시간 가량이 걸린다 합니다. 

그렇다고 병원에 도착했다고 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전공의가 환자를 살피고 혼자서는 안되겠다 싶으면 전문의를 찾고 결국 검사와 수술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허비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의료 현실입니다.

미국이나 영국등 선진국은 어디에서든 중증 외상환자가 발생 할 경우 1시간이내 수술받을 확률이 82%입니다. 

영국은 1년 365일중 320일 헬기가 뜰 수 있고 의료진과 의료장비를 모두 갖추고 15분안에 직접 현장에 도착합니다. 

매 순간 외과의사는 환자의 생사의 갈림길에서 핏물과 오물을 뒤집었쓰며 일해야 합니다.

환자의 배를 갈랐을 때 피가 확 솟거나 췌장이 다 깨진 환자가 도착하여 여기저기서 솟아오르는 피를 수술로 막고 혈압을 잡아가며 저승가던 환자도 끌고 올 수 있어야 합니다. 

이국종교수는 환자가 도착했다는 콜을 받으면 자다가도 벌떡일어나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기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한 쪽눈이 거의 안보이고 부러진 어깨가 예전같지 못하여 외과의사의 하루하루가 힘든 듯 합니다. 

보건복지부는 힘들고 갈수록 지원이 적은 외과의사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고선진국처럼 체계적인 응급 환자에 대한 외상쎈터지원을 국제수준으로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덴만의 영웅 이국종교수가 내일 우리 전주에 오십니다. 

한국문화예술 아카데미에서 특별강사로 초청되어 석해균선장과 북한에서 귀순한 오청성씨에 대한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들어볼 예정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며 실명위기에 있는 좌측 눈의 빠른 회복을 기원합니다. 

이형권 칼럼니스트 leehyung@nvp.co.kr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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