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30주년 기념, 차이나미디어·길림신문 공동기획
-중국 거주 한중 우호 증진과 경제협력 기여자 20여명 인터뷰
[재중한인 성공스토리] 한중수교 30주년 기념 행사 일환으로 (주)차이나미디어 및 길림신문이 그간 중국에 거주하면서 한중 우호 증진과 경제협력에 기여한 20분을 선정하여 현지 취재한 인터뷰 기획 기사특집
-중국 생활 11년차, 200여 명 중국 직원 거느린 한국인 센터장
-"여기에 남을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직원들도 맘 놓고 따라주더군요”

중국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시 개발구에 위치한 과학기술공업단지. 이 공업단지 남쪽 건물 4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NAVER’라고 쓰인 큰 회사 출입문이 보인다. 이곳은 바로 한국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옌지지사다. 여기에는 약 200여 명에 달하는 중국인 직원들이 네이버를 위해 일하고 있다. 얼마 전 기자는 ‘재중 한국인 성공 스토리’ 기획 시리즈에 초대된 네이버 옌지지사의 책임자 권성진 센터장을 만났다.
부임 11년차, 네이버 옌지지사 최장기 리더가 되다
“처음 파견이 결정 났을 때는 이렇게 길게 머물게 될 줄 몰랐죠. 3년 정도 예상하고 왔던 것 같습니다.”
네이버는 2004년에 중국에 처음으로 법인을 설립하고 베이징에 본사를 두었으며 2006년 5월에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에 옌지지사를 설립했다. 권 센터장은 2010년 12월에 부임하여 지금까지 11년을 네이버 옌지지사와 함께 했다. 초기에는 한국 본사 파견근무로 발령 받았다가 현재는 옌지 지역 법인으로 전환하고 이곳에 아예 뿌리를 내렸다고 한다.
“해외 파견근무에 대한 동경, 더 늦기전에 새로운 걸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새롭게 도전한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중국 땅을 밟았지만 이외로 동포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옌지는 곳곳에 한민족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음식이나 문화, 언어가 있어서 너무 빨리 적응을 했다는 권 센터장. 또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도 중국인들이 즐겨먹는 ‘마라썅궈(麻辣香锅)’라고 한다.
“주위에 고마운 분들이 참 많아요. 그래서 적응이 더 빨랐을지도 모르죠. 개발구관리위원회와 관리사무소에서 많은 도움을 주셔서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업무를 진행할 수 있었어요.”
좋은 사람들과 기분 좋게 일하는 와중에 그는 좀 더 있어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한국 네이버 본사의 직책을 과감히 버리고 중국 법인으로 소속을 옮기게 되었다.
권 센터장은 “언젠가 돌아갈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며 우스개 소리 삼아 말했다.
“쇼핑 관련 대체불가한 조직으로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권 센터장의 소개에 따르면 네이버 중국 법인 본사는 베이징에 있고 3개의 지사는 중국의 청두, 따롄, 옌지에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그중 청두지사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따롄지사는 게임 등의 테스트를, 옌지지사는 쇼핑 운영을 책임지는 형식으로 세밀하게 분공이 되어 있다.
권 센터장이 책임진 옌지지사의 주업무는 한국 네이버 사이트에 쇼핑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또한 네이버의 소프트웨어나 시스템 개발에 직접 참여하진 않지만 다양한 아이디어나 제안을 하고 있으며 그 아이디어가 채택되면서 더 많은 범위와 영역의 업무를 맡게 되었다.
권 센터장이 제안한 “자동화”와 “시스템 고도화”는 실제로 효율적이고 최적화된 인력 체계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쇼핑 관련 업무는 네이버 본사나 기타 자회사들도 많이 취급하고 있지만 권 센터장은 “저희가 지금 하고 있는 업무를 다른 조직이 대체불가하게 만들고 싶은 게 제 목표이자 꿈입니다. 어찌보면 지금도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라고 말했다.
해외 파견근무 결정 뒤에는 아내의 ‘내조의 힘’이 커

대체불가한 조직을 만들고 싶다는 꿈 하나로 사업에 온갖 열정를 쏟아부을 수 있었던 그 에너지의 원천은 바로 가족의 절대적인 지지와 응원이라고 권 센터장은 말한다.
“당시 한국에 있을 때는 ‘모든 것은 빨리빨리’였죠. 회사의 조직문화가 그랬었어요. 금요일에 해외 파견근무 제안을 받았는데 월요일에 답복을 드려야 하는 상황이었고 집에 와서 어렵게 얘기를 꺼냈더니 아내가 아직 젊은데 도전해보라며 적극 지지해주더라구요.”
가족의 절대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아마 오늘의 권 센터장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권 센터장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중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고5개월 뒤 아내도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다 정리하고 남편을 따라 중국 옌지에 도착했다. 해외거주 경험이 없었던 권 센터장이 첫 해외 도전을 시작한 나이가 38세, 남편의 사업을 적극 지지해주며 자신의 직업까지 버리고 남편 따라 인생 제2막을 시작한 그의 아내는 당시 35세였다. 권 센터장의 말처럼 8세 큰아들과 한 살 터울인 작은 아들은 나이가 어렸으니 아무것도 모른 채 아빠, 엄마를 따라 나섰고 옌지라는 낯선 이국 도시에 적응해야 했다.
“아내는 다행히 결혼 전에 중국에서 2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경험이 있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저보다도 엄청 빨리 적응을 했고 또 까다로운 성격도 아니어서 주변 사람들과도 잘 어울렸어요.”
큰아들은 8살 때 처음 옌지에 와서 국제학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는데 벌써 내년이면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다. “어느덧 입시생 부모가 되었다”며 권 센터장은 “두 아들 모두 요즘 사춘기가 왔는지 기분이 엄청 업 되어있다”며 사춘기 부모로서의 고민도 털어놓았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이 있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 권 센터장은 인터뷰 내내 아내의 든든한 내조와 가족의 지지를 여러번 강조했다.
“옌지는 제2고향, 이젠 여기가 편해요.”
11년 동안 옌지에서 생활하고 근무하면서 권성진 센터장이 이끌고 있는 네이버 옌지지사는 옌지시에서 개발구 우수기업, 우수 지사로 여러 차례 선정되었다. 또한 그는 직원들을 조직해 지역사회 기여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회사 동료 30명으로 구성된 회사 내 ‘손과 손 동아리’는 고아원, 양로원 봉사를 정기적으로 하고 있으며 매월 5,6명의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해 주고 있다고 한다. 권센터장은 “지역 사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38살에 온 옌지, 어찌보면 가장 열심히 일하고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할 시기를 여기서 보낸거잖아요. 그러니 옌지는 저의 제2고향, 그게 딱 맞는 표현인 것 같아요.”
“10여년 동안 한국에 잠깐 잠깐 출장이나 개인 사정으로 1년에 서너 번씩 다녀왔었는데 이젠 하도 옌지에서 오래 생할하다보니 한국에 가면 오히려 조금 낯선 기분이 드는 거 있죠.”
서울에서 나고 자란 권성진 센터장은 본인을 ‘외유내강형 리더’라고 한다. 평균 나이 27세인 직원 200여명을 거느린 그는 때론 바른말을 거침없이 해야 하는 엄격한 리더이기도 했고 때론 세대 차이가 느껴지는 아빠 혹은 삼촌같은 존재로 역할을 유연하게 수행했다. 본인의 말처럼 가장 치열하게 분투하는 시기인 30대와 40대를 옌지에서 보내고 바야흐로 50대를 바라보고 있다.
“옌지도 10년 동안 너무 많이 변화하고 발전했어요. 그 변천사를 제가 지켜보았죠. 크게 발전한 도시가 되었고 살기도 훨씬 좋아졌어요.”
“제2고향에 정착해야죠. 이젠 여기가 편해요. 여기가 마지막 보루라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돌아갈 사람’이라는 인상에서 옌지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할 생각을 하자 직원들도 센터장을 더 잘 따라주었다. 10여년을 직원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이제는 직원들의 집안 사정도 두루 알고 있으며 가족들의 안부 인사도 서로 나누는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이수영 (주)차이나미디어 대표 lsy@nvp.co.kr / 현지취재: 길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