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30주년 기념 행사 일환으로

(주)차이나미디어 및 길림신문이

그간 중국에 거주하면서 한중 우호 증진과 경제협력에 기여한 20분을 선정하여 현지 취재한 인터뷰 기획 기사

 

정세명(38세, 한국인)씨는 현재 중국 지린성 창춘첨단기술개발구에 위치한 바이오테크놀로지회사에서 백두산 홍송(紅松)에 열리는 열매 잣을 원료로 건강식품을 개발하고 있는 전문가다. 중국인 아내(한족)와 슬하에 귀여운 아들딸을 두고 지린성 창춘시에 살고 있다.

2012년 중국 지린(吉林)성의 창춘(長春)중의약대학 학부를 마치고 석사 학위까지 취득한 한국 청년 정세명 씨, 그의 꿈은 박사 학위를 따고 미국에 건너가 한방병원을 차리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가 대륙에서 꿈을 더 크게 이룰 줄 누가 알았겠는가?

중국에서도 대학이 밀집해 있는 지린성 창춘시는 ‘문화의 도시’, ‘대학의 도시’로 불린다. 십 년 전에도 창춘시에는 한국 유학생이 천 명이 넘었다. 어느 날, 창춘시의 한 먹자골목 맛집에서 정 씨는 옆 테이블에 앉은 한족 아가씨한테 한눈에 반해버렸다. 한국 홍익대학교에서 5년간의 유학 생활을 하며 시각디자인학과 석사 학위까지 취득하고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중국인 A씨 역시 한국 유학생인 정세명 씨가 싫지 않았다. 이로써 정세명 씨는 중국인 A씨와 결혼하고 아들딸을 낳고 아예 중국에 정착하게 된다.

"요리를 만들어서 가족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정세명 씨, 그래서 그는 한식 자격증까지 땄다. 회사에서 제품 개발에 몰입하다가도 잠시 쉴 때면 가족을 위한 요리 메뉴를 개발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 되었을 정도다. 풍부한 식재료와 중국 현지 각종 풍격의 요리법까지 수렴해 그만의 독특한 요리를 탄생시키기도 한단다.

"요리나 한의학 그리고 건강식품은 모두 원리는 똑같다”는 것이 정세명 씨의 주장이다.  여러 가지 재료들을 조합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공통점이라는 것이다. 창춘중의약대학병원 내분비과 의사로 한동안 근무하면서 임상경험까지 갖춘 데다가 중국 유명대학인 지린대학 화학학과도 1년 동안 전공했던 그는 건강식품 개발에서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창의성을 발휘했다. 그동안 쌓은 풍부한 한의약 지식과 화학공법을 활용해 백두산 지역의 특산인 홍송(紅松)의 열매인 잣을 원료로 한 건강식품을 이미 수 십 개나 개발했다. 

회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던 중 정세명 씨가 스위치를 누르자 은은하면서도 상쾌한 소나무 향기가 사무실 한가득 퍼지면서 마치 깊은 소나무 숲 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중국에서 공기청정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그는 천연 솔씨로 무공해 소독방향제를 개발, 판매해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가정도 회사도 함께 키워온 10년 

결혼 후에도 학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고 한의학 박사 과정에 진학한 정 씨는 어느 날 장인 어른이 자신이 운영하는 바이오테크놀로지회사의 제품 개발을 좀 도와 달라고 하자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나 잠깐 도와드리고 끝내려던 일이 아예 평생 직업이 될 줄이야. 

당시 그의 장인은 “미국에 가 병원을 차리는게 꿈”이라는 이 한국인 사위를 앉혀 놓고 이해득실을 따져 주었다. “인생은 크게 멀리 내다보시게. 의사가 아무리 환자를 잘 본들 얼마나 보겠나? 그러나 좋은 건강제품 하나 잘 개발하면 수많은 환자는 물론, 세계의 더 많은 환자들에게도 건강을 되찾아 줄 수 있지. 중국이 곧 세계 최대시장이 되고 경제발전과 함께 중국 국민들의 건강수요가 엄청나게 될 터이니 잘 생각해 보게나......” 

자신의 아메리칸 드림을 쉽게 포기할 수 없어 고민 중이던 정 씨, 그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인 것은 바로 장인 어른의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으니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해보라”는 약속이었다.

그렇게 2013년부터 장인 회사의 제품개발팀에 합류한지 올해로 10년째다. 그의 장인이 운영하는 지린파이눠바이오테크놀로지(吉林派诺生物技术股份有限公司)는 한의약 이론을 기반으로 홍송(紅松)을 이용해 건강식품을 개발, 생산하는 하이테크기업이다. 정 씨 장인이자 회사 이사장인 자오얼저(赵尔哲)씨는 중국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창업 리더’, ‘국가급 하이테크 창업인재’인 기업가다.

중국 중소벤〮처기업 전용 장외시장인 신삼판(新三板)에 상장된 이 회사는 성수기에 연매출이 1억 8천만 위안()을 기록했으며 창춘 본사 외에 지린성 메이허커우시(梅河口市)에 5억 위안을 투자해 글로벌잣정밀가공산업단지도 세웠다. 홍송(紅松)의 열매인 잣으로 약 100여 종의 건강식품들을 개발, 생산 중이다. 그 중 반 정도는 외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정 씨를 통해 한국시장에도 수출되었다.

이제 회사의 제품개발 주력이 된 정세명 씨는 회사 기획을 담당한 아내와 함께 장인을 도와 회사의 든든한 왼팔, 오른팔이 되었다고 한다.

3대째 이어온 인연 ...”한중관계도 부부사이 같지요”

사실 정 씨와 중국의 인연은 그의 부친 세대로부터 시작되었다. 정 씨의 아버지는 일찍 한중 수교 이후인 1996년에 한국의 한 과학기술대표단의 일원으로 중국을 방문하게 된다. 한눈에 중국의 성장 잠재력을 파악한 그의 부친은 지린성 지린대학과 한국 연세대 간의 자매결연 및 연구소 협력을 적극 추진하며 수많은 중국인들과 인연을 만들어갔다. 그 중에는 중국의 병원 원장, 대학 교수, 연구소 전문가, 중국 정계의 간부 등 다양한 인사들도 있었다. 그들의 우정은 “20여년 지기 친구채팅그룹”이 있을 정도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당시 18세 어린 나이였던 정세명 씨는 여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따라 ‘중국’이라는 이국 타향에 올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중국이 세계를 주도하게 될 터이니 아예 중국에서 공부하는 게 좋겠다”는 아버지의 조언과 중학교 3학년때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이 세상에 아픈 사람이 없도록 꼭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그는 중국 유학도 중의학 전공을 선택했다. 

지금도 67세의 정 씨의 부친은 중국 친구들과3대째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정 씨의 어린 자식들까지도 친할아버지 친구분들의 손자들과 각별한 친구 사이가 되어 잘 어울려 지내고 있다.

아버지는 해마다 꼭 중국 친구들을 만나러 특별히 오시는데 지난2년간은 코로나19로 못 오시니 제가 대신 한 분 한 분 찾아 뵙고 문안을 드렸습니다. 아버지의 친구분들은 명절이면 저희 식구들을 집에 초대하고 평소에도 힘내라고 자주 술 한 잔 사 주십니다. 친자식처럼 아껴 주시고 사업도 많이 도와주시면서 제가 중국에서 잘 정착해서 살 수 있도록 마음 써 주시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한중의 피가 섞인 아이들 세대는 이미 융합이 된 것이죠. 한국인과 중국인, 사실 서로 문화 차이가 크게 없어요. 저희 부부의 경우 상대 국가에서 유학을 하면서 서로의 문화를 많이 이해하고 있는 편이죠. 가끔 다툴 때면 문화 차이가 나는데 그 때면 한국말로, 아내는 중국어로 싸웁니다. 사람은 보통 다툴 때는 자시이 가장 자신 있는 언어로 싸우게 되죠. 한바탕 다투다가 제가 먼저 꼬리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싸우다가 마지막에는 꼭 ‘미안해! 사랑해! 안아줘!’로 끝납니다.” 

"한중 국민들 간에 존재하는 오해와 편견도 마찬가지죠. 30년을 살아온 부부의 조정기와도 같다고 할까요? 역지사지, 상대의 입장으로 생각하면 다 이해가 됩니다. 서로가 떨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알면 다 용서가 되고 이해가 되는 것이죠.”  

나의 꿈, 대륙에서 펼치다

중국과 인연을 맺은 지 어언 십여 년, 중국 창춘시는 이제 정 씨의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일터가 모두 창춘시에 있기 때문이다.

"저는 1년에 한 번, 열흘 정도 한국에 출장 가게 되는데 낮에는 바삐 업무를 보고 저녁이면 친척친〮우들을 만나면서 정신없이 보내고 부랴부랴 중국에 돌아오게 됩니다. 비행기를 타고 창춘공항에 도착하면 ‘집에 왔구나! 이젠 창춘이 내 집이로구나!‘하는 마음이 들지요.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자 어린 마음에 꼭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가진 정 씨였다.  그러나 중국에서 정착하면서 꿈이 무엇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정 씨는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중국에서 한의학을 전공했습니다. 한의학을 전공하면서 제가 주목한 분야는 바로 농업이었지요. 만병의 시작이 바로 땅과 물이었던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면 사람들이 다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창춘시 교외에 부지를 특별히 장만하고 주말이면 이와 관련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또 마침 중국 정부가 ‘흑토지 보호’ 정책을 내놓게 되자 저의 꿈과도 딱 맞아떨어진거죠!” 

정 씨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창춘시가 ‘세계 3대 흑토 지’중의 하나인 둥베이 지역 노른자 땅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이 흑토지의 퇴화를 막고 토양의 유기질 제고 및 수질 복구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의사가 되어 사람들에게 건강을 선물하겠다는 어릴 적 꿈이 여기 중국이라는 광활한 대지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산다”고 말했다.

이수영 (주)차이나미디어 대표 lsy@nvp.co.kr / 현지취재: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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