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이나 회사나 무엇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순간마다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누구나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두렵다. 더욱이 지니고 있는 능력과 자산은 한정되어 있다 보니 매번 머뭇거리게 만든다. 하지만 순간의 선택은 십 년 혹은 더 나아가 백 년을 좌우한다.
일찍이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 탄생)와 D(Death 죽음) 사이의 C(Choice)다”라는 명구를 남겼다. 매번 위기(Crisis)를 기회(Chance)로 만드는 원동력도 탁월한 선택(Choice)에 달려 있다. 어떻게 보면 창업의 기반(Base)부터 글로벌 기업이라는 목표 도달(Destination)은 매 순간 슬기로운 ‘선택(Choice)’이 이루어낸 축적의 산물이다.
불확실성한 비즈니스 환경과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현명한 선택은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우리는 사례를 통해 많이 보아왔다. 기업 경영은 어쩌면 레드 오션은 미리 버리고 블루 오션을 찾아 끊임없는 탐색과 선택의 여정이다.
이와 관련 ‘염일 방일(拈 一 放 一)’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하나를 얻으려면 이미 갖고 있던 하나를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큰 물독에 빠져 있는 고귀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장독을 깨뜨려야 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큰 것을 구하기 위해서는 작은 것을 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교훈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의 파격적인 승부수가 주목을 받고 있다. 다름 아닌 ‘듀얼(이중) 전동화’ 전략이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인 제네시스가 2025년 이후 출시하는 신차를 모두 전기차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제네시스가 앞장서서 2035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면서 혁신적인 비전을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그려보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모든 신차는 수소 또는 배터리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현대자동차 연료전지의 고출력·고성능 구현을 위해 차세대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절묘한 승부수 발표는 코스피 시장에서도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지난달 초 카카오뱅크(11위)는 한때 현대차(시가총액 9위)를 추월하여 시가총액 9위로 올라서면서 증권가의 핫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현대차는 ‘전동화 브랜드 비전’ 발표 후 지난달 23일 기점으로 카카오뱅크를 제치고 시가총액 9위 자리를 되찾았다. 시대의 대세를 먼저 꿰뚫고 과감한 과거 정리와 미래 ‘먹거리’에 올인 한다는 승부수가 관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칭기즈칸의 핵심 참모, 야율초재(耶律楚材)는 일찍이 “깊은 깨달음은 간결하고, 큰 가르침은 시대를 관통 한다”고 하였다. 그는 비움과 채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칭기즈칸이 동서양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는데 있어서 야율초재라는 걸출한 책사(策士)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가 남긴 가르침은 "與一利不若除一害"(여일리불약제일해), 生一事不若滅一事"(생일사불약멸일사)“이었다. ”하나의 이익을 얻는 것이 하나의 해를 제거함만 못 하고, 하나의 일을 만드는 것은 하나의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다"고 설파하였다. 바로 올바른 선택의 중요성과 집중을 위한 폐기의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우리에게 성큼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에너지, 디지털, IT 기술 혁명의 대전환점에 서 있다. 버려야 될 것과 채워야 할 것에 대한 고민이 절실한 시기다. 사물과 현상에 대한 꼼꼼하고 과학적인 관찰을 통해 블루오션을 찾기 위해 바르고 정확한 길을 찾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경쟁력과 기업의 생존력 강화 차원에서 ‘관물찰리(觀物察理)’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시점에 와 있다.
현대 자동차 그룹의 파격적인 승부수는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게임체인저(국면 전환 요소)‘와 ‘퍼스트 무버(선도자)‘ 역할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오늘 떠올린 구상은 내일을 설계하는 씨앗이 되고, 오늘의 실천은 언젠가 풍성한 열매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계란이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오면 새로운 생명(병아리)으로 부활하듯이 고정 관념과 기존 관습의 틀을 벗고 새롭게 태어나야 비상(飛上) 할 수 있는 법이다. 선택은 필수인 상황에서 어떤 분야에 집중하느냐가 명운(命運)을 가른다. 기업의 성공요소 측면에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화두는 점점 중요해 지는 추세다.
이상기 논설위원(한중지역경제협회 회장) sgrhee@nvp.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