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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헛발질로 러시아군의 영공 침범을 제대로 따지지도 못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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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헛발질로 러시아군의 영공 침범을 제대로 따지지도 못할 판..
  • 이현섭 기자
  • 승인 2019.07.2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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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비전e] 적반하장, 말바꾸기, 어슬픈 대응, 오락가락, 우왕좌왕...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영공 침범 이튿날인 24일 국내 언론은 여전히 이 사건에 많은 지면과 시간을 할애했지만, 명쾌한 결론을 도출하기는 커녕 이런 용어들로 도배하다시피 했다. 러시아측이 적반하장, 말바꾸기를 했다고 비판하는 매체나, 우리 정부(청와대)가 어슬픈 대응으로 오락가락, 우와좌왕했다고 꼬집은 매체나 도긴개긴이었다.

영공 침범을 당하고도, 그 후속 단계에서 혼선이 빚어진 가장 큰 이유는 러시아를 제대로 아는 전문가의 부재가 첫손에 꼽힌다. 소련 붕괴이후에도 여전히 강대국 심리를 갖고 프로파간다(선동)에 능한 러시아와 러시아군의 실체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 청와대와 국방부간의 소통 문제도 제기된다. 일련의 흐름을 시간대별로 짚어보면 분명해진다.

러시아 A-50U기의 영공 침범은 우리 시간으로 23일 아침. 모스크바는 우리보다 6시간이 늦으므로 러시아국방부 시계는 23일 새벽을 가리키고 있다. 과거 모스크바특파원의 경험으로도 러시아측의 공식 입장이 나올 수 없는 시간대다. 적어도 일과가 시작되고, 그 사안이 주요 정책결정자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검토가 끝나야 러시아측 입장을 짐작할 수 있다. 일러야 9시30분. 우리 시간으로 오후 3시30분이다.

하지만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 수석은 "주한 러시아 차석무관이 전날 오후 3시쯤 우리 국방부측에 유감 표명을 했다"고 24일 발표했다. 시차를 감안하면 러시아측 공식 입장이 나오기 전이다. 윤 수석이 세세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우리 외무부가 주한러시아 대리대사를, 국방부가 러시아 차석무관을 급히 초치해 영공 침범에 강력히 항의했던 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러시아 차석무관은 모스크바로부터 어떤 지시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측의 항의에 외교적 용어로 '유감'을 표명하지 않았을까 싶다. 윤 수석이 밝힌 구체적인 차석 무관의 발언 역시, '영공침범이 사실이라면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기기 오작동에 따른 것' 정도의 외교적 가정법을 사용했을 개연성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통역의 오류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모스크바 시간으로 23일 10시(우리시간 오후 4시)쯤 이즈베스티야(09시 54분)와 코메르산트 (10시 54분) 등 러시아 유력언론들이 러시아 국방부의 기본 입장을 전했다. "러시아군이 23일 중국군과 합동으로 계획된 초계비행을 실시했다. 한국 공군기들이 러시아 조종사들과 사전 교신에 나서지 않고, 무단으로 비행의 안전을 위협하는 공중 폭거를 저질렀다"는 내용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오후 주러 한국무관을 불러 비슷한 내용의 항의 전문(нотa)을 전달했다. 이 소식은 오후 6시께(한국시간 밤 12시) 타스와 인테르팍스 등 현지 주요 통신에 의해 전세계로 타전됐다. 영공침범에 대한 러시아측 입장은 이것으로 완전히 정리됐다.

그로부터 10시간쯤 지나 윤 수석이 청와대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국방부는 이미 러시아측의 항의 전문까지 주러 한국대사관 무관부로부터 전달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윤 수석의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나왔다. 러시아 차석무관이 전날 유감을 표시했다고. 뒤늦게 러시아 국방부의 항의 전문 수령 사실을 확인(?)한 그는 오후에 다시 기자들 앞에서 "러시아측 입장이 달라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사실상 러시아측에게 말바꾸기 혐의를 씌우고, '적반하장' 격으로 몰아간 셈이다.

러시아 언론들이 연합뉴스를 인용해 윤 수석의 발표를 전했고, 주한러시아 대사관측이 트위터를 통해 이에 항의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청와대가 앞장서 봉합을 서두르다 일을 그르쳤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한일 반도체 분쟁에 불화수소 제공의사까지 밝혔던 러시아가 우리 영공을 침범하다니.. 진정한 의도가 뭐냐?'는 여론에 심리적으로 쫓겼던 것같다. 아니면 '우리 나라 영토가 사방에 구멍이 쑹쑹 뚫렸다'는 야당의 거센 비판에 적극 대응하려다 헛발질을 한 것일 수도 있다.

보도에 따르면 오늘(25일) 한러 양국이 국방실무 회담을 갖는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우리 측은 러시아의 A-50U기의 영공 침범 관련 자료를 제시하면서 러시아측 사과를 받아낼 수도 있다. 다만 신중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현지 코메르산트 지는 '한러 국방 실무회담 개최 사실을 러시아의 어느 정부 부처에서도 확인할 수 없다"고 썼다. 진짜 열리기는 할 것인지 궁금하다. 우리 측의 일방적 희망사항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또 하나. 러시아는 미국의 GPS에 대항하는 자체 위성정보시스템인 '글로나스'를 운영중인 강대국이다. 시리아 등 중동에서 벌어진 주요 사건의 책임 소재를 따질 때, 러시아는 미국 등 서방측 증거자료에 '자체 증거'로 반박해 왔다는 사실도 염두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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