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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민주화 시위 ‘유혈진압’ 주역 리펑 전 中총리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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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민주화 시위 ‘유혈진압’ 주역 리펑 전 中총리 사망
  • 이현섭 기자
  • 승인 2019.07.24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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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3월 14일 리펑(오른쪽) 당시 중국 총리가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폐막식 도중 장쩌민 중국 주석과 얘기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1989년 중국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의 유혈 진압을 주도했다는 지목을 받은 리펑(李鵬) 전 중국 총리가 9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관영 신화통신과 홍콩 동망(東網) 등이 23일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리펑 전 총리는 고령에 따른 노환으로 전날 밤 11시11분께 베이징에서 숨을 거뒀다.

지난 2016년 이래 리펑 전 총리는 방광암으로 투병하면서 위중한 상태라는 억측이 분분했다.

리펑은 1988년부터 10년 동안 총리에 재임하고서 장쩌민(江澤民) 지도부 때 공산당 서열 2위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까지 역임했다.

그는 1989년 6월 톈안먼 광장에서 계속되는 민주화 시위를 강경진압하자고 주장해 이를 관철시키고 자오쯔양(趙紫陽) 당시 당총서기를 실각시켰다.

리펑은 그해 5월19일 심야 베이징 시내에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톈안먼 광장에서 계속 민주화를 촉구하는 학생과 시민에 대한 조치를 취할 것임을 경고했다.

그는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에게 군대를 동원해 시위대를 진압하자고 설득, 결국 수많은 희생자를 낳게 만들어 '톈안먼의 도살자'라는 악명까지 얻었다.

지금까지 리펑의 건강 이상설은 여러 차례 나돌았다. 2008년 2월 리펑이 중풍을 맞아 병원으로 급히 후송돼 목숨을 건졌다는 소문이 퍼졌다.

리펑이 뇌혈전을 일으켜 응급처치를 받았다는 일부 해외 매체가 전하기도 했다.

본명안 리위안펑(李遠芃)인 리펑은 1928년 10월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태어났다.

리펑의 생부는 공산 혁명 초기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무장투쟁을 벌이다 체포되어 참수형으로 생을 마친 공산혁명 열사 리옌쉰(李硯勛)이다.

공산중국 건국 이래 죽을 때까지 총리를 역임한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양자로서 알뜰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또한 저우언라이의 동료로 1927년 장제스의 상하이 쿠데타 후 노동자 폭동을 조직하다 체포되어 처형된 자오스옌(趙世炎)은 외삼촌이다.

저우와 자오는 장제스의 북벌군이 상하이에 입성하기 전 노동자 폭동을 일으켜 군벌군을 쫓아내고 상하이를 장악했으며 이는 장제스가 상하이 무혈입성 후 반공 쿠데타를 일으키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리펑은 이처럼 가계의 이력을 살펴볼 때 '태자당'의 '태자당'이다.

그는 공산중국이 최대 위기 상황을 맞은 톈안먼 사태 당시 초강경 정면 돌파 대응에 선봉에 섰다.

하지만 리펑은 공산당의 존망이 걸린 위기 국면을 벗어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였음에도 최고 지도자의 위치에는 오르지 못했다.

최고 지도자에게는 '통합'의 이미지를 갖출 것이 요구되는데 리펑은 이를 결여한 것으로 비추어졌기 때문이다.

리펑은 장쩌민 총서기 아래서 '실세 총리'로 군림했으나 권력 서열 2위의 전인대 상무위원장(국회의장격)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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