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전e] 나는 한시를 강의합니다. 한국한문학을 전공하지만, 학문의 특성상 동아시아 고전 속에서 한시와 관련된 이야기를 같이 해주었습니다. 주로 한자의 뜻과 전고를 밝히는 방식으로 강의를 해왔습니다만, 내용을 보면 옛이야기가 흥미롭게 전해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강의를 듣던 학생들은 낯선 지식과 다소 고급스러운 언술에 매료되어 눈을 반짝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초점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흔히 15분 법칙으로 알려져 있듯이, 인간의 집중력은 새로운 지적 자극과 감성적 공감이 없으면 금세 추동력을 잃고야 말지요.

특히 ‘우리의 옛시’는 지금의 자신과 동떨어진 것임을 애초부터 각오하고 수강했던 학생들에게도 견디기 힘든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의 반짝이는 눈을 강의시간 내내 요구하는 것은 참으로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교재를 바꿔보았습니다. 강의방식도 수정했지요.

그러나 오히려 강의는 산만해지고, 학생들의 얼굴에는 지루한 빛이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문제가 무엇일까? 혹여 의무로 수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일까? 꼭 그것만도 아닌 듯했습니다. 자원해 수강했던 학생들의 얼굴에서 조차 난처한 기색이 엿보일때면, 교단에 서 있는 내내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에이, 그냥 기존의 방식대로 한시의 주제와 표현들, 전고를 설명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그동안 그런 방식의 강의가 진행되어 온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지! 이런 식의 이유를 들먹이며, 어느덧 관성에 사로잡혀 있던 나를 합리화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찾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습니다. 그랬습니다. 바로 자신의 삶과 동이 닿지 않는 비현실성이 문제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문학은 세상에서 그리 환영받지 않는 학문이었지요. 이른바 한문교과가 중고등학교에서 구석으로 내몰리고, 대학에서도 한문학과가 퇴출되는 즈음에 젊은이들이 한문학을 더욱 백안(白眼)으로 바라보는 게 당연했습니다. 게다가 전공하는 학문과 무관한 방향으로 사회 진출을 준비하면서, 한시를 자신의 지적 자산으로 여기길 주저하는 학생들에게, 나의 강의는 학점을 취득하기 위한 통과의례 같이 여겨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이 강의는 그 어떤 감흥도 생산하지 못하는 강의였던 것입니다.

 

 

◆ 김승룡 교수는...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고려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식인’, ‘인간의 마음’, ‘로컬리티’ 등을 염두에 두고 《묵자》, 《사기》를 비롯해 한시와 시화를 가르치며 고전지식이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음을 설파하고 있다. 동아시아 한문고전의 미래가치를 환기하며 청년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려는 것이나 한문교육이 인성을 증진할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저서로 《한국한문학 연구의 새 지평》(공저, 2005), 《새 민족문 학사 강좌》(공저, 2009) 등을 비롯해 《옛글에서 다시 찾은 사람의 향기》(2012), 《고려후기 한문학과 지식인》(2013), 《한국학의 학술사적 전망》(공저, 2014), 《청 춘문답》(공저, 2014) 등이 있고, 역서로 《송도인물지》(2000), 《악기집석》(2003) 등을 비롯해 최근 《잃어버린 낙원, 원명원》(공역, 2015), 《능운집》(공역, 2016), 《 문화수려집》(공역, 2017) 등이 있다. 《악기집석》으로 제5회 가담학술상(2003)을 수상하고, 베이징대 초빙교수를 두 차례(1997, 2008)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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