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특강★시민의 인성] 박귀순 교수⑤ 무예, 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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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특강★시민의 인성] 박귀순 교수⑤ 무예, 무아
  • 박귀순 교수
  • 승인 2019.06.1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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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비전e] 한 여아가 있었다. 어느날 그녀는 무예 수련 중에 우연히 무아 경험을 했으며, 이후 지속적인 수련과 노력을 통해서 여아 본인만의 무예를 통한 치유 방법을 찾아냈는데, 이러 한 여아의 이야기를 펼쳐 본다.

여아는 부모의 맞벌이로 보살펴 줄 사람이 없어 어린 4세부터 유치원에 보내졌다. 1970년대 당시에는 초등학교에 바로 입학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유치원을 가더라도 평균 7세가 되어서 갔다. 4세 아이가 유치원에 가는 것은 특이한 경우였다. 여아는 유치원이 끝나는 2시부터 같은 건물에 있던 주산학원 지금의 속셈학원과 무용학원, 마지막으로 태권도체육관까지 돌며 부모의 퇴근을 기다렸다.

여아는 가정 사정으로 유치원, 주산학원, 무용학원, 태권도체육관을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4년 동안 다녀야 했다. 7세 되던 어느 날, 아이는 유치원과 다른 학원은 변함없이 갔지만, 남자아이들만 있는 태권도체육관은 가기 싫어서 건물 어느 구석에 숨어 버렸다.

태권도 사범은 여아의 실종에 놀라서 부모에게 연락했으며, 직장에 있던 부모는 경찰에 신고하고 찾아다녔다. 여아는 숨어 있다가 잠이 들어버렸고, 새벽이 되어서야 깨어나 집으로 돌아갔다. 부모는 그 날 이후 여아를 태권도 체육관에 보내지 않았으며, 여아는 그토록 싫어하는 무예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초등학생이 된 여아는 입학하자마자 왼쪽 가슴에 코흘리개 수건을 달고, 일찍부터 훈련된 운동능력 덕분에(?) 학교 육상선수에 발탁되었으며, 때로는 핸드볼과 농구 등 다양한 종목의 전천후 엘리트 선수로 선발되어 대회에 참가했다.

여아는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학교 선수로 선발되어 훈련해야 했으며, 지역이나 전국 규모 대회에 참가했다. 어릴 적 과격했던 무예가 싫었던 여아는 거친 스포츠선수 활동이 그다지 즐겁지도 않았으며, 그저 학교생활의 일환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아는 하굣길에 우연히 우슈체육관 당시 쿵푸체육관을 입관하게 되었는데, 학교 엘리트 선수생활을 부모의 강력한 만류로 그만두고, 가벼운 운동을 하고자 시작한 것이었다.

여아는 가부장적인 아버지로 인해 몰래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서 1년만 수련할 것을 약속하고, 방과 후 ‘독서실행’을 ‘체육관행’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우슈체육관에 입관한 여아는 매일 하루 한 시간 반씩 한 달 동안 기본동작만 배웠다.

기본동작은 1평도 안 되는 공간만 활용하면 되었으며, 2보 이상 좌우전후 동작도 없었다. 생각보다 흥미롭지 않고 힘만 들고 지루했다. 여아는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약속한 1년을 채우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기본동작과 보법 등을 배우며 수련을 했던 5개월이 지난 어느 날, 매일 매주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호흡하고 시간을 늘리면서 수련하고 동작을 익혔는데, 그 날은 달랐다. 여느 때처럼 도복을 갈아입고, 수련장 앞쪽에 줄을 맞추어 수련 시간 전까지 명상(Meditation)하고, 기본동작과 응용동작을 복습했으며, 다양한 새로운 동작도 익힌 날이었다.

그 날 명상은 집중도와 몰입도가 전과 달랐으며, 수련을 할 때도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다른 날과 다른 호흡과 신체의 변화를 느끼며 기본 동작과 응용 동작을 수련하고 익혔다. 그런데 익힌 동작을 혼자 구석에서 수련하고 있던 중에 여아는 불현듯 무아지경(無我之境)을 경험하게 되었다.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그 장소에서 50명 남짓 되는 수련생이 빼곡히 실내에서 수련하고 있었는데, 여아가 무아지경을 경험할 때는 그 공간에는 여아 혼자였으며 아무도 없었다. 여아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무아(無我)를 경험한 것이었다. 이는 명상에서 이어진 호흡에 기수련이 제대로 된 합(合)이 이루어지면서 일어났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무아지경의 경험은 그렇게 길게 지속되지 않았다. 여아는 수련기간이 짧았으며, 그러한 경험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다. 그러나 여아에게는 잠깐의 경험이었지만 황홀했으며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여아는 이 경험을 다시 하기 위해 진진하게 노력을 했는데, 그 노력의 방법은 명상과 수련이었다.

명상은 여아로 하여금 안정적인 호흡과 정신적인 집중을 할 수 있게 했으며, 수련할 때의 기의 운영을 느낄 정도로 몸과 마음의 예리함과 명철함을 더해주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수련은 외면적인 기술과 기능의 효율은 물론 심신일체(心身一切)된 심도 깊은 무예 수련으로 이어지게 했다.

특히 몇 번을 보고 익혀야 될 동작들은 한두 번에 바로 익힐 수 있었고, 호흡 또한 동작과 일체가 되어 내력(內力)이나 외력(外力)이 증가되었으며, 무공의 발전 속도도 불이 붙기 시작했다. 수련을 통한 무아지경의 시간은 수련의 정도와 비례해 점점 늘어났으며, 여아가 고교 2학년부터 국술7) 국가대표로 선발되고, 많은 국내와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는 동력이 되었다. 

여아는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좀 더 심도 깊은 무예 수련을 위해 중국과 대만에서 무예 실기와 이론을 공부하고 연구했으며, 목표로 한 성과에 도달할 수 있었다. 특히 실기 강의 때는 어떠한 어려운 무예 동작이나 응용법을 누구보다 빠르게 익혔는데, 집중하면 뇌 안의 복사기가 작동해 그 동작이 자동으로 찍히듯 여아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중국어 언어가 서툰 외국 유학생에게 더욱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대만 유학 중에 대학 1학년 1학기 때 재학생 54명 중에 53등을 했던 여아는 이학원(理學院), 예체능계열 단대에서 전체 수석과 근소한 차이로 차석으로 졸업하기도 했다. 불과 6개월 동안 중국어를 익히고 대학에 입학해 일반 중국 학생들과 함께했던 여아의 이러한 성과는 무예를 통한 수련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대만에서 개최된 4년 간 전국무예대회에서 도(刀), 곤(棍), 검(劍), 창(槍) 등 병기술, 권술, 대련 대타, 내가권, 태극권 등 각 종목에서 매년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 역시 명상과 무예 수련을 통한 극복의 성과였다. 

여아는 명상과 무예 수련 등을 통해 무아지경의 경지에 도달할 줄 알게 되었으며, 생활 속에 있었던 마음의 상처나 아픔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치유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무예를 통한 회복, 다시 말해 치유는 꾸준한 수련과 노력으로 가능할 수 있었다.

무예는 우리 삶과 생활 속에 함께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무예 수련의 기본 요인인 호흡은 일상생활에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인이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호흡 없이는 살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호흡을 이미하고 있고, 인식에 따른 호흡은 기공으로 이어지며 기공은 우리를 회복시키고 치유해준다.

기공이나 명상 등의 무예 수련을 위해 비싼 돈을 들이고, 먼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된다. 무예 고수나 유단자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있는 그 자리가 무예 수련 장소가 될 수 있으며, 기공이나 육자결호흡법 등의 다양한 무예 수련 방법을 통해서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 치유를 도모할 수 있다. 그리고 행복할 수 있다. 

자! 한번 제대로 호흡해 보자. 마음과 건강의 치유를 위해, 행복을 위해.

 

 

◆ 박귀순 교수는...


영산대 태권도학부 동양무예전공 교수. 대만국립사범대와 일본국립가나자 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무예사’, ‘한·중·일 무예교류사’, ‘무예사상· 철학’, ‘체육철학’, ‘체육사’ 등을 중심으로 한 이론과 우슈를 비롯한 동양무예 실기를 가르치며, 무예를 통한 치유의 가능성과 방법, 효과 등을 설파하며 실용적인 학문을 지향하고 있다. 특히 무예 실기에 치중된 무예교육 환경을 개선하고, 이론과 인성을 겸비한 미래지향적이고 화합할 수 있는 무예, 체육인이 성장할 토대를 조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무예의 역사·문화적 조명》(공저, 2004), 《體育ㆍスポ?ツ史の世界-大地と人と歷史との?話-》(공저, 2012), 《한국체육사》(공저, 2015), 《한국체육인명사전》(공저, 2015), 《한국의 스포츠학 70년》(공저, 2017), 《동양무예의 연구-한국의 무예도보통지의 24반 무예 형성을 중심으로-》(2017) 등이 있다. 그리고 국내는 물론 중국, 대만, 일본, 그리고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the History of Sport>(SSCI) 등의 저명 학술지에 무예와 체육·스포츠와 관련된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동북아시아 체육·스포츠사학회 최우수논문상(2005)과 한국체육사학회 우수논문상(2016)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영국 러프버러대(Loughborough University)에서 방문교수로 활동하며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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