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수석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추대되면서 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세습’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창업주 할아버지 정주영 회장은 불모지에서 자동차산업을 개척했고, 아버지 정몽구 회장은 뚝심으로 현대기아차를 세계적인 카메이커로 키워놓았다. 하지만, 정의선 부회장 앞에 놓인 길이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현대차의 경쟁력은 양과 질 모두 후퇴하고 있다. ‘미래차’는 준비 부족이고 ‘과거차’는 품질논란에 휩싸인 데다 ‘현재차’는 실적부진이다. ‘정의선 시대’는 아직 불투명하고, ‘정몽구 시대’는 평가가 유보적이다. 정몽구가 정주영을 넘어 정몽구가 되었듯이 정의선은 정몽구를 넘어서야 거듭날 수 있다. 이런 부자의 숙명이 <뉴스비전e>가 정의선 체제의 출범에 맞춰 정몽구 회장을 집중 조명하는 이유다. <편집자주>

● 글 싣는 순서
①멈춰버린 불도저
②인정받지 못한 왕자의 반란
③월드카의 꿈과 좌절
④꿈틀대는 정의선 라인
⑤일관제철소 건설, 눈물로 쇳물을 만들다
⑥아버지의 이름에서 아들의 이름으로
⑦경영은 유산되고, 부동산 유산만?
⑧미래는 멀고 과거는 발목을 잡는다
⑨사자는 새끼를 벼랑 끝에 세우지 못한다
⑩“아들아, 바다에 이르려거든 강을 버리거라!”

[뉴스비전e 재계팀]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추대되면서 20년 가까이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오던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불도저’와 ‘뚝심’이 트레이드마크였던 정몽구 회장의 질주에 제동을 건 것은 역시 건강 악화였다.

지난 2016년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청문회 출석을 마지막으로 밖에서 정 회장의 모습을 보았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당시에도 정 회장의 언변이나 표정에서 ‘치매’ 추측이 무성했다.

판단을 하지 못할 정도로 치매가 심해졌다는 소문은 이제 사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최근 취재진이 만난, 정 회장과 가깝게 지낸 경제계 원로는 정 회장 근황에 대해 “1년 넘게 정 회장과 연락조차 하지 못했다”며 “정 회장을 만나고 온 사람들 얘기로는 치매 증세가 아주 심각한 상태이고, 이번 정의선 수석부회장 인사도 정 회장을 배제한 가족들이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 원로는 “2009년 아내(이정화 여사)가 세상을 떠난 후 정 회장의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짐작했다.

정 회장 자녀들과 이웃이자 지인인 한 사업가는 “2017년 12월 (겨울에) 러닝셔츠 바람으로 마당에 있는 정 회장을 본 적이 있다”고 전했다. 목격담을 들려준 지인은 그것을 ‘치매’ 탓으로 돌리지는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치매 증세가 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목격자는 또 “자식들이 정 회장의 집을 에워싸고 있을 정도로 가깝게 살고 있지만, 정작 정 회장 집 안에는 곁에서 돌봐줄 여성 간병인이나 가사도우미가 없어 철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 같다”며 “집 안에 가족이 아닌 여성을 들이는 것을 극도로 꺼렸는데, 그것은 '여성편력'이 남달랐던 선친 정주영 회장에 대한 어린시절 반감 때문일 것”이라고 해설했다.

정 회장은 언젠가부터 그룹 안팎에서 존재감이 사라진 듯하다.

양재동 사옥 정원에는 유독 아름드리 소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

소나무를 무척이나 좋아한 정 회장이 현장을 진두지휘하며 심은 것들이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는다(樹木等到花 謝才能結果)”는 정 회장의 평소 좌우명이 연상된다.

정 회장은 어떤 꽃을 버리고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나무는 심은 사람보다 훨씬 오래 산다. 정 회장은 살면서 누리고 감내했던 영욕을 (치매 때문에)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게 됐지만, 어쩌면 그가 심은 소나무들이 오래도록 간직할지 모른다.

1938년생(호랑이띠)으로 올해 여든둘인 정 회장은 이제 멈춰버린 불도저가 돼버렸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정 회장이 이루고 잃은 영욕의 세월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옛날 퇴촌 별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금방이라도 저 소나무들 사이로 정 회장이 호랑이처럼 어슬렁 걸어나올 것만 같다.

[현대차그룹 정의선 시대, 다시 보는 정몽구 회장② 인정받지 못한 왕자의 반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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