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란에 휩싸였던 한말(漢末) 문인 시의 허무주의적 정서 혹은 염량세태(炎凉世態: 세력 있을 때 아첨하며 따르다가, 권세가 없어지면 냉정하게 떠나는 세상 인심)의 개탄한 시 한수가 있다.
이는 원래 도연명 전원시의 느긋한 이미지와는 결이 판이하다.
한시(漢詩) <옛 시를 본뜨다/의고(疑古)> 도잠(陶潛)365~427/ 향년62세
"무성한 창 아래 난초, 빽빽한 집 앞의 버들.
애당초 그대와 작별할 땐 오래 떠나 있지 않으리라 했지.
집 떠나 만 리길 나그네 되어 도중에 좋은 친구를 만났네.
말하지 않아도 서로 마음이 빠져들었지. 술잔을 주고받지 않았는 데도.
난초는 마르고 버들마저 시들 듯 결국 처음의 언약 저버리고 마는구나.
젊은이들에게 이르노니 서로 안다고 사귐이 두터운 건 아니라네.
의리 위해 목숨까지 바친다 해도 헤어져 떨어지면 무엇이 더 남으랴."
무성한 난초와 빽빽한 버들, 詩는 여유롭고 평화로웠던 삶을 이렇게 은유한다.
"이별은 길어지고 낯선 땅의 고난 또한 더해질 때 다행이라면 '도중에 좋은 친구를 만나' 의기 투합하며 지낸 것, 무언의 교감을 나누었으니 진실된 사귐이라 믿었을 테다."
화자(話者)는 '의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난초와 버들이 시들듯 '처음의 언약' 은 깨지고 만다.
그 언약의 상대가 새 친구인지 떠나온 가족인지 모호하다.
다만, 의리가 실로 소중한 가치라는 자각은 명료해 보인다.
詩는 9수 연작시의 제1수다. 시제가 '옛 시를 본뜨다' 인데 시인은 무엇을 본뜨려 했을까.
도잠(陶潛) 중국 동진 말기~남조 송대 초기의 시인이자 문장가로, 도연명(陶淵明)이라 불리는 그는 자연의 아름다음을 주제로 한 전원 시를 많이 썼고, 대표작으로 '귀거래사'와 '도화원기' 등이 있다.
기교 없이 평범하고 꾸밈 없는 시를 썼으며, 관직에 나가는 것이 맞지 않아 현령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시를 썼다.
후대에 육조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를 받은 그는 자연이 주는 즐거움을 흠뻑 누린듯 합니다.
1,650여년 전 漢代에 태어나 전원 시인으로 이름을 날린 도잠(본명) 연명(호)의 '도연명'은 당초 벼슬에 맞지 않은 성격으로, 관리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농사를 짓고 농촌의 정서를 시로 옮겨 놓는, 전인적인 인물로 여겨진다.
전인적 인간상 (全人的 人間像)은 지성(知), 감성(情), 의지(意)를 두루 갖추고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도덕적 측면의 조화롭게 발달한 사람을 일컫는다.
21세기 현대적 사회에서 전인적 인간상을 갖추고 올바로 살아가는 사람이 귀한 세태를 맞이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는 몇몇 안 되는 어른들의 탄식을 듣는 서글픈 시대입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初冬, 11월의 환절기 추위에 부디, 평강하길 빕니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