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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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산업 전반의 핵심 원자재인 구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의 확산과 데이터센터 건설 증가,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대 등으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주요 광산 사고로 인한 공급 차질이 겹치며 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0월 15일, 국제 구리 가격이 사상 최고가에 근접했다고 보도했다. 런던금속거래소(LME) 3개월물 구리 가격은 13일 기준 톤당 10,820.5달러로, 2024년 5월 기록한 최고치(11,104.5달러)에 거의 도달했다.

9월 8일에는 세계 2위 규모의 인도네시아 그라스버그 구리 광산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광산 운영사인 미국 리버티 하버-맥몰랜드 브론즈 금 회사는 “불가항력 조항”을 근거로 공급 의무 면제를 선언했다. 이 사고로 전 세계 구리 공급망에 큰 충격이 발생했다.

미국 씨티그룹은 이번 사고 이후 글로벌 구리 생산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2025년 전 세계 구리 광산 생산량은 2,315만 톤으로 전년 대비 0.1% 증가, 2026년에는 2,346만 톤으로 1.3% 증가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기존 전망보다 낮은 수준이다.

장기적으로는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구리는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의 핵심 소재이자, 데이터센터의 송전망 구축에도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씨티그룹은 2026년 전 세계 구리 소비가 전년 대비 2.9%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며, 약 40만 톤의 공급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구리 가격은 2026년 상반기 톤당 12,000달러를 돌파할 가능성이 있다.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펀드와 투기자금이 구리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각국 정부는 희소해지는 구리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에 나섰다. 특히 미국은 8월 말 구리를 ‘핵심 광물’ 목록에 포함하는 초안을 공개했다. 해당 목록에 오르면 관련 기업은 보조금 지원과 채굴 허가 절차 간소화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은 애리조나주에서 레졸루션 구리 광산을 개발 중이며, 완공 시 국내 최대 규모의 광산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지역 주민 일부는 환경 훼손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한편, 신규 광산 개발은 여전히 더디다. 광산 건설에는 10년 이상이 소요되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지연된 프로젝트들도 많다. 이에 따라 기존 광산을 인수하는 M&A(인수합병) 움직임이 활발하다. 영국의 자원 대기업 앵글로 아메리칸은 9월 초 캐나다의 테크 리소시스와 합병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구리 가격 상승이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고 본다. 일본 시장리스크컨설팅의 신무라 나오히로는 “기업들은 신규 개발보다는 기존 광산 인수를 통해 생산력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구리 시장의 긴장 상태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AI와 에너지 전환 흐름 속에서 구리가 **새로운 ‘전략 금속’**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금의 고가는 시작일 뿐”이라며 “향후 몇 년간 구리의 황금시대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최규현 기자 kh.choi@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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