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0월 9일 보도를 통해 소프트뱅크 그룹이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을 결합해 제조업 혁신을 이끌기 위해 스위스 전기 장비 제조업체 ABB의 로봇 사업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반도체 대기업 엔비디아 역시 일본의 로봇 대기업 야스카와 전기와 손잡고 같은 분야의 사업 기회를 모색하며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겸 CEO는 이번 인수를 두고 “다음 전진기지는 로봇과 자율주행 등 ‘물리적 인공지능’”이라며 “초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을 결합함으로써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획기적인 진전을 이룰 것”이라고 강조했다.
ABB는 글로벌 산업용 로봇 시장에서 2~3위권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디지털 트윈’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이 기술은 가상 공간에서 공장 환경을 재현해 효율적인 생산 시뮬레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술로, 업계 관계자들은 “ABB는 대형 로봇 기업 중 데이터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회사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소프트뱅크는 이러한 디지털 기술의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이미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사업에 이어 로봇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올해 1월 이사회에서는 그룹 내 로봇 관련 자원을 통합하기 위한 중간 지주회사 설립을 결정했으며, 6월 주주총회에서 손 회장은 “실체를 가진 로봇에 인공지능을 심어 산업의 면모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며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변화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손정의 회장은 미국 내에 로봇과 자율주행차가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스마트 공장 클러스터를 구축할 계획이며, 총 1조 달러 규모의 투자가 예상된다. 그는 자회사 스타게이트가 개발 중인 초대형 컴퓨팅 파워 인프라를 활용해 제조업 혁신을 가속화할 방침이다. 이번 ABB 로봇 사업 인수 추진은 이러한 비전의 일환이다.
한편 엔비디아 역시 야스카와 전기, 후지쓰와의 협력을 통해 ‘물리적 인공지능’의 상업화를 시도하고 있다. 소프트뱅크와 엔비디아는 모두 공장 현장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기반으로 AI 학습을 가속화하는 공통 목표를 갖고 있으며, 실제 공장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물리 AI’는 기존 인터넷 기반 인공지능보다 높은 실용성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치바나증권의 가마타 시게토시 애널리스트는 “반도체, 로봇, 데이터센터, 전력 등 4대 핵심 산업 중 데이터센터와 칩 시장이 이미 급성장 중이며, 로봇 분야의 진전은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고무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소프트뱅크가 제시한 ABB 로봇 사업 인수 금액은 약 53억 달러로, 이는 해당 사업의 세전·이자전 감가상각 전 이익(EBITDA)의 약 17배에 해당한다. 미쓰이스미토모닛코증권의 기쿠치 사토루 애널리스트는 “소프트뱅크는 어디까지나 투자회사이며, 이번 인수가 향후 수익으로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인수 발표 후 소프트뱅크 주가는 2% 하락 마감했다.
가마타 애널리스트는 “이번 인수로 단기적으로 자금 유동성이 일시 감소할 수 있지만, 소프트뱅크의 재무 상태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AI와 제조업의 융합을 위한 소프트뱅크의 인수 행보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프트뱅크가 산업용 로봇 분야에서 대규모 인수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과거 이 회사는 미국 킹스턴 테크놀로지를 인수했다가 손실로 매각한 바 있다. 이번 ABB 인수가 과거의 실패를 극복하고 AI와 로봇 융합의 성과를 실질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규현 기자 kh.choi@nvp.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