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밀가루 산업이 역사적인 침체에 직면하고 있다. 한때 세계 최대의 밀가루 수출국이었던 프랑스는 이제 수입 의존도가 점차 높아지며 순수입국으로 전락했다. 현재 수입 밀가루는 프랑스 수요의 10%를 충족하고 있으며, 슈퍼마켓에 유통되는 1kg 포장 밀가루의 4분의 1이 독일산 제품이다.
프랑스 전국 밀가루 산업 협회에 따르면 1996년 160만 톤에 달하던 밀가루 수출량은 2023년 21만 4천 톤으로 90% 가까이 감소했다. 반면 수입량은 급증해 2024년에는 40만 톤에 달하며 무역적자 기록을 세웠다. 협회는 특히 독일산 밀가루가 가격 경쟁력과 자동화된 생산 체계로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독일은 연간 10만 톤 이상의 가공 능력을 가진 제분소가 28개에 달하는 반면, 프랑스는 절반 수준인 14개에 불과하다.
이 같은 흐름 속에 일부 프랑스산 밀은 독일로 수출돼 가공된 뒤 다시 프랑스 시장에 역수입되기도 한다. 포장에는 프랑스 원산지를 강조하는 삼색기가 인쇄돼 있지만, 가공 과정은 국외에서 이뤄져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준다. 현재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밀의 20%만이 자국에서 가공되고 있으며, 그중 상당수는 수제 빵집에 공급된다.
산업 쇠퇴의 배경에는 수입국들의 자율성 강화도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는 과거 북아프리카에 대량의 밀가루를 수출했으나, 이들 국가가 자체 제분 시설을 구축하면서 수출 시장이 급격히 축소됐다. 이로 인해 약 20개의 수출 전용 제분소가 문을 닫았다.
한편 터키는 러시아 밀을 바탕으로 한 전문 가공 체계를 구축해 세계 최대 밀가루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독일과 터키의 공세 속에 프랑스 밀가루 산업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프랑스의 네 번째 규모 제분소였던 스트라스부르 대방앗간 회사가 2023년에 문을 닫은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프랑스 밀가루 산업의 최대 문제는 낮은 수익성이다. 농업신용은행 조사에 따르면 밀가루 산업의 영업이익률은 2~4% 수준에 불과해 식품 가공 산업 평균인 7%를 크게 밑돈다. 프랑스 전국밀가루업협회는 이를 두고 “식품 산업 내에서 가장 수익성이 낮은 분야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협회 관계자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없이는 산업 현대화가 불가능하다고 경고한다. 장프랑수아 루아소 협회장은 “합리적인 가격과 정당한 보수가 보장되지 않으면 프랑스의 식량 주권도 위태로워진다”고 지적했다. 장-제롬 야플로 부회장 역시 “정부가 도전에 대응하지 않는다면 향후 10~15년 안에 대규모 제분소 폐쇄와 시장 점유율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좋은 작황에도 불구하고 수익성 악화와 국제 경쟁 심화로 프랑스 밀가루 산업은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산업의 미래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투자 확대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시급한 대응이 요구된다.
최규현 기자 kh.choi@nvp.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