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영 전 KAI 사장
 강구영 전 KAI 사장

공기업은 국민의 돈으로 움직인다. 그럼에도 공기업은 종종 국민이 모르게, 국민의 뜻과는 동떨어진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KAI(한국항공우주산업)의 강구영 전 대표를 둘러싼 이번 '수상한 녹음파일' 사태는, 그 공기업 운영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례다.

최근 특정언론이 공개한 해당 녹취록에 따르면, KAI의 내부 감사조직은 한 직원에게 특정 진술을 유도하며 ‘샘플 문서’까지 전달했다.

그 진술은 회사에 유리하도록 조작되기를 바랐고, 거절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뉘앙스도 분명히 담겨 있었다. 회유와 협박이 공존하는 장면이다. 더욱이 이 작업은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는 정황이 녹음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제 그 윗선이 누구인지, 더 이상 상상에 맡길 필요는 없다. 실명은 거론되지 않았지만, 직책과 권한을 고려하면 정점에 있는 인물로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바로 강구영 전 대표다.

KAI는 겉으로는 민간기업 형태를 취하지만 최대 주주가 수출입은행인 만큼 공기업이라도 해도 무방한 대한민국 유일의 항공우주 제조 기업이다. 군용기부터 위성, 발사체까지 다룬다.

그런데 그중 가장 추락 중인 건 지금의 경영신뢰다. 강 전 대표는 최근 자신이 추진하던 스마트플랫폼 사업을 돌연 중단했고, 지난해 TV조선을 직접 방문해 특정 언론 보도를 무마하려 한 정황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사용된 언어, 기조, 행보를 종합해보면 그의 관심은 '경영'보다 '권력 지형'에 더 가까웠다. 정권이 바뀌고 공기업 인사가 대대적으로 교체되자 등장한 강 전 대표는 '전략무기 민간 이전'을 밀어붙이며 보수 진영의 요구에 부응하는 듯한 행보를 보여 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전략은 회사의 전략이 아닌 정치의 전략에 가까웠다는게 전문가들이 보는 공통적인 시각이다.

이번 사태를 단순히 ‘한 공기업의 일탈’로 치부해선 결코 안 된다. 오히려 공기업을 낙하산 인사의 안식처로 활용하고, 내부 통제를 핑계로 조직적 진술 회유를 감행한 구조 전체를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책임은 없고 권한만 있는 자리’에 앉은 이들은 언제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직을 기꺼이 이용한다. 직원은 협박 대상이 되고, 감사 조직은 진실을 가리는 기계가 된다. 국민이 낸 세금은 ‘침묵을 강요하는 보상금’으로 사용된다.

강 대표는 지난 6월 4일 사의를 표명했고, KAI 이사회는 지난 7월1일 사표를 수리했다. 그러나 사표 한 장으로 끝날 일은 아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대표의 퇴진' 문제가 아니다. 공기업 운영의 본질과 시스템을 되묻는 계기여야 한다. 수사는 진행 중이지만, 더 중요한 수사는 국민의 기억 속에서도 계속돼야 한다.

공기업은 국가의 얼굴이다. 그 얼굴이 가면을 쓰고 있다면, 국민이 직접 벗겨야 한다. KAI 녹음파일 사태는 경고다. 경고는 지금 들리지 않으면, 곧 추락의 신호로 바뀐다는 점을 모두가 새삼 알았으면 한다.<김창권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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