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삼꿉"은 "삼을 굽다"라는 말을 줄인 단어인데 국어사전에도 등장하지 않는 영남지방의 방언으로 여겨집니다.
삼(麻)은 마약으로도 사용되는 대마초(大麻草)를 지칭합니다.
근래에는 삼을 재배하는 농가가 시대의 변천에 따라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196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남부지방의 농촌지역에서는 농부들이 흔히 재배하는 소득작물이었습니다.
대마는 원래 중앙아시아가 원산지로서 키가 5m까지 자라는 1년생 초본 식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섬유인 삼베를 취득할 목적으로 대마를 재배하였고, 이른 봄에 파종하여 7월에 수확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삼을 수확하면 삼의 잎을 제거하고 삼의 줄기들을 직경 6~70cm 정도로 묶어서 가마니를 둘러싸고 그 위에 비닐을 칭칭 감아 공기가 통하지 않게 한 후에 야외에 만든 커다란 아궁이 위에 헌 드럼통으로 된 솥을 걸고 그 위에 삼을 묶은 단을 세우고 불을 지피지요.
이렇게 몇 시간 동안 불을 때면 삼이 삶아지게 됩니다.
이 과정을 "삼꿉"이라 부릅니다.
잘 익은 삼을 꺼내어 흐르는 물에 담궈 미끌미끌한 진액을 제거하고 껍질을 벗기는데 통상적으로 여기까지가 남정네들의 몫이고, 그 후부터는 여성들에게로 역할이 넘어가게 됩니다.
삼의 줄기는 그 길이가 3~4m에 이르는데 길다란 줄기에 붙은 섬유를 벗겨내면 하얀 속줄기가 남습니다.
이 줄기를 "제럽"으로 불렀는데 경상도 지역에서만 사용되던 방언으로 생각됩니다.
제럽은 굵기가 검지 정도인데 단단하면서도 길다랗고, 가벼워서 지붕을 덮거나 벽을 막는 용도의 건축자재로도 쓰였습니다.
동네의 개구쟁이들은 제럽의 끝에 소의 꼬리털로 만든 작은 올가미를 매달아 매미를 잡는 용도로 사용했고, 크기가 손바닥 만한 삼각형 틀을 붙여 거미줄을 엉키게 한 다음 잠자리를 잡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삼은 개구쟁이들의 장난감으로 사용하기 위해 재배한 작물이 아니었습니다.
농민들이 삼을 재배한 주 목적이 하절기 옷감이나 이불 등을 만드는 섬유작물이었기에 위에서 언급한 바대로 재배와 수확, 삶는 과정까지는 남성들이 담당했고, 껍질을 벗기는 공정부터는 여성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됩니다.
길다란 삼의 껍질을 되도록이면 가늘게 손톱으로 찢어서 말린 후 여름 날 대청마루나 정자나무 그늘에 10여 명이 모여앉아 삼을 삼습니다.
"삼을 삼는다"는 것은 가늘게 쪼갠 섬유 한 올, 한 올을 이어 붙이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길다란 섬유의 한 쪽 끝을 이빨로 물어서 일부를 끊어내고 더 가늘게 만든 후 침을 묻히고, 또 다른 섬유의 끝을 같은 방식으로 만든 다음 양 끝을 허벅지에 대고 손바닥으로 문지르면 두 가닥의 올이 한 올로 연결되는데 이렇게 반복하는 과정을 "삼을 삼는다"고 합니다.
한나절 동안만 이 작업을 계속하면 부녀자들의 뽀얀 허벅지는 시퍼렇게 멍이 들 정도였지만 여인들은 갓 수확한 피감자를 삶아다놓고 먹으면서 이런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삼을 삼는 작업이 끝나면 베틀에 실을 걸고 옷감을 짜는데 이렇게 짜여진 옷감이 "삼베"였습니다.
이 모든 공정을 통틀어서 우리는 "길쌈"이라 불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농촌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으나 지금은 화학섬유의 등장과 함께 자취를 감추고 말았으니 아쉬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배대열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