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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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우리나라의 국주(國酒)는 국민들의 가슴 속에 "막걸리"로 각인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일본의 사케처럼 정부에서 국주로 공식적인 지정을 한 것은 아니지만 막걸리가 국민들의 정신 속에 "국주"로 깊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0여 년 전인 중국 당나라 시대의 시인 이상은(李商隱)은 "한 잔 신라주(新羅酒)의 기운이 새벽 바람에 수이 사라질까 두렵구나" 라며 우리 술의 뛰어남을 노래했고, 고대 일본의 기록에도 백제의 "인번(仁番)"이란 사람이 술 빚는 방법을 알려줬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고려시대 문인인 이규보의 시에도 "나그네의 창자를 박주(薄酒)로 푼다"는 구절이 등장하지요.

고대 인도어인 범어(梵語)를 찾아보면 술은 원래 어원(語源)이 쌀이었습니다.

쌀로 빚은 술은  "수라(SURA)"로 부릅니다.

이런 내용을 유추해 보면 이 술이 바로 막걸리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우리 조상들께서는 막걸리를 단순히 몸을 해치는 "술"의 개념 보다는 몸에 이로운 약(藥)이나 끼니를 대신하는 음식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 있습니다.

막걸리를 약주(藥酒)로 불렀거나 모주(母酒) 등으로 불렀던 것이 그런 연유입니다.

막걸리에는 식이섬유와 유산균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다이어트와 변비 해소에도 도움이 됩니다.

말 그대로 약주(藥酒)인 셈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가 근대화에 접어드는 과정에서 농주(農酒)이자 국주(國酒) 격이었던 막걸리를 세수(稅收) 확보의 차원에서 아무나 담그지 못하게 단속하기 시작하면서 농가들은 막걸리를 드러내놓고 담그지 못하고 은밀하게 숨겨서 담가마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이름을 두고 막걸리에는 밀주(密酒)라는 불명예스런 이름도 붙었습니다.

밀주 단속을 시작하자 시골의 면 단위 양조장에서는 갑자기 늘어난 막걸리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고 편법으로 막걸리를 자연숙성(발효)이 아닌 강제로 숙성시키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카바이트 같은 화학물질로 막걸리를 단기간에 숙성시키다보니 그 과정에서 숙취를 유발시키는 ALDH 같은 물질이 생성되어 혈관에 쌓이면서 건강을 해친다는 소문이 나게 되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막걸리의 수요를 침체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막걸리는 우리 근세사에서 애환이 많았던 술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배대열 칼럼니스트 BDYTYY@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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