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사진=뉴시스 제공.

선구자는 항상 외롭습니다.

선구자의 사전적 정의는 "말을 탄 행렬에서 맨 앞에 선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근래에는 보통 어떤 일이나 사상(思想)에 있어 그 시대의 다른 사람들 보다 앞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오는 11월 8일 실시되는 미얀마의 총선 때문입니다.

소득수준이 낮은 저개발 국가이긴 하지만 정치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은근히 놀라기도 합니다.

미얀마에서 최근에 국제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로힝야족(Rohingya people)의 집단거주지역에 인접한 곳입니다.

방글라데시와의 국경부근 지역인 까닭에 종종 로힝야족과 관련된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듣게 됩니다.

이곳에서 보고 느끼는 로힝야족 사람들의 생활은 뉴스에서 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열악합니다.

그들은 원래 파키스탄이 동 파키스탄과 서 파키스탄으로 분리되어 있을 때 동 파키스탄으로부터 국경을 넘어 미얀마로 와서 영국이 인도를 내세워 대리 통치를 하던 시절 완장을 차고 미얀마인들에게 갑질을 해대던 사람들입니다.

그 숫자가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백여 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국민의 대부분이 불교를 신봉하는 미얀마 사람들과는 달리 로힝야족은 이슬람교를 믿는데 여기서 비극이 싹트고 있습니다.

미얀마 정부에서 로힝야족들에게는 시민권도 부여하지 않고 있으며, 불교 승려들이 그들을 탄압하고 박해를 해도 못본 체 방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투표권이나 최소한의 생존권은 주어야 하는 것이 도리이겠으나 그들은 숨을 쉴 자유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사지(死地)로 내몰리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다만 세상의 생존 방법은 어디서나 똑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 위해 오늘 이 글을 씁니다.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힌다는 뜻의 약육강식(弱肉強食)이란 사자성어가 이 세상의 가장ㅇ 기본적인 룰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이런 분쟁지역에서 사업을 펼치면서 더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동물들만 서식하는 밀림에서도 이런 "약육강식"의 법칙이라고 해야하는 것인지 아니면 먹이사슬이라 불러야 하는것이 적절한 표현입니다.

아뭏튼 이런 구도가 존재하는데 인간세계는 동물의 세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다는 생각입니다.

만약 로힝야족이 유대인이었다면 미얀마 정부에서도 이렇게 대접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영국이나 프랑스계 사람들이었다면 모국(母國) 정부에서 이렇게 방치하지는 않았을 터였습니다.

그들은 기댈 언덕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보니 아무에게서나 천대를 받습니다. 

힘이 없으니 국제사회로 부터도 무시를 당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은 누구도 없습니다.

그들이 바다에서 조난을 당해 물고기들의 밥이 되어가도 관심 밖의 일입니다.

세상의 이치가 이럴 진대 우리는 다시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냉정히 자각(自覺:자기 경험의 반성에 따른 자기 인식)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독립된  우리  조국이 있기에 세상에서 그나마 "사람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일단은 강한 국력을 가진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의 불쌍한 영혼들이 바다를 떠돌다가 파도에 휩쓸리고, 더러는 굶어서 죽어가는 현실을 목도(目睹:눈으로 생생히 봄)하면서 "인간은 만인이 공평하다"라는 것도 결국은 "힘을 가진 자에게나 통하는" 헛구호라는 것을 처절히 느낍니다.

일제가 힘 없는 우리나라를 짓밟았을 때  삭풍(朔風:겨울철에 북쪽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찬바람)이 몰아치는 삭막한 만주벌판에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고 절치부심(切齒腐心:대단히 분하고 마음을 썩힘)하던 선조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 의롭고 외로운 전장(戰場:싸움터)에서 잃어버린 조국을 생각하며 불렀던 노래인 선구자(先驅者)의 곡조가 이국(異國) 땅을 헤매도는 필자의  입에서 흥얼거려지는 새벽입니다.

괜스레 눈가에 이슬이 맺힙니다.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으려 분연(奮然)히 일제와 맞서다가 쓸쓸하게 스러져간 선열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70여년 전 한국전쟁에서 산화한 장병들의 유해를 발굴하여 끝까지 예우를 다하는 미국 정부의 정책에서 우리도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애국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이야 합니다.

군인이 희생하면 정부나 국민들이 그 유족들에게까지 최선을 다해 모시고 기억한다는 사실을 알게될 때 진정한 애국정신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나라의 위정자들이 깨달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독립운동을 했거나 한국전쟁에서 조국을 지키다가 유명을 달리한 장병이나 부상을 당한 군인들에게 우리 정부나 국민들이 어떻게 예우했는지 스스로를 뒤돌아볼 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이국의 계곡에서 산짐승들의 먹잇감으로 되었을 지도 모르는 선열들의 그 숭고한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런 자유를 누리고 있노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선구자님들이 외롭고 서럽지 않도록 우리가 그 후손들이라도 잘 보살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번성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영웅으로 모셔야 다시는 나라를 뺏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선조님들의 희생(犧牲) 덕분으로 오늘, 우리는 자유로운 하늘 아래에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를 느낍니다. 

배대열 칼럼니스트 BDYTYY@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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