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전e] 촉망받던 아들을 잃은 부모님은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으셨다. 급기야 어머니께서는 동경제대 입학을 코앞에 둔 나에게 급전을 쳤다.

“기동아, 동경제대에 들어갈 생각 말고 속히 조선으로 돌아오거라!”

어머니는 형이 죽은 것이 동경제대에 다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계셨다. 식민지에서 유학 온 학생이어서 심신이 고달파 몹쓸 병을 얻은 것이라고 여기셨던 것이다. 쌍둥이를 모두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나를 불러들이려 하신 것이다.

조선학생에게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힘든 동경제대를 포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막내아들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눈물을 외면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목숨을 잃는다면 공부가 다 무슨 소용이고 명문대가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생각하셨을 것이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의 심정을 나는 이해해야 했다.

나는 3년의 일본 유학생활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6고를 마치고 한국에 와서 대학을 다닌 사람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동경제대를 포기한 것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자식의 목숨보다 중한 공부가 없듯이 어머니보다 소중한 학교가 세상에 있겠는가.

기섭이 형이 세상을 떠난 후 여동생 기진이가 장티푸스를 앓았다. 서문고여를 졸업하고 집에 있을 때의 일이다. 고생은 했지만 다행히 치유되었다. 부모님은 또 얼마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셨을까.

기진이는 우리 3형제가 모두 집을 나와 유학길에 올라 있는 사이 혼자 부모님을 모시며 평양서문고등여자학교에 다녔다. 서문고여를 졸업하고 집에 남으니 결혼이 문제가 되었다. 아버님께서는 큰형에게 급우 중에서 신랑감을 찾아보라고 하셨다.

큰형은 절친 중에 현인섭을 소개했다. 큰형은 의대 4학년인 1940년 봄에 의대를 졸업했다. 큰형은 생리학교실로, 인섭 형은 병리학교실로 들어가 공부했고 임상의학은 하지 않게 되었다.

이듬해(1941년) 11월 기진이가 결혼식을 올렸고 성북동 집에서 살았다. 이 집은 부모님이 사위를 위해 사준 것으로 대지가 40평 가량 되었다.

◆ 남기동 선생은...

1919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100살이다. 일본 제6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신생 이공학부 응용화학과에 편입했다. 1946년 중앙공업연구소 지질광물연구소장, 요업 과장으로 근무하며 서울대, 고려대, 한양대 등에도 출강했다. 부산 피난 중에도 연구하며 공학도들을 가르쳤다. 6·25 후 운크라 건설위원장을 맡아 1957년 연산 20만 톤 규모의 문경시멘트공장을 건설했다. 화학과장, 공업국 기감(技監)으로 인천판유리공장, 충주비료공장 등 공장 건설 및 복구사업을 추진했다. 1960년 국내 대학 최초로 한양대에 요업공학과를 창설하고 학과장을 맡았다. 1962년 쌍용양회로 옮겨 서독 훔볼트의 신기술 ‘SP킬른(Kiln)’ 방식으로 1964년 연산 40만 톤 규모의 영월공장을 준공했는데, 최단 공사기간을 기록해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영월공장 준공으로 우리나라는 시멘트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1968년 건설한 동해공장은 단위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공장 증설을 거듭해 1992년 우리나라 시멘트 생산량은 세계 5위가 되었다. 1978년 동양시멘트로 자리를 옮겨 2차 오일쇼크 때 시멘트 생산 연료를 벙커씨유에서 유연탄으로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 특허 대신 공개를 택해 업계를 위기에서 살려냈다. 이 공적으로 1981년 '3·1 문화상(기술상)'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Suharto) 대통령 요청으로 1992년 인도네시아 최초의 시멘트공장인 '시비뇽 시멘트플랜트(P.T. SEMEN CIBINONG)'를 건설했다. 한국요업(세라믹) 학회, 한국화학공학회, 대한화학회등 3개 학회, 대한요업총협회(지금의 한국세라믹총협회) 회장으로 학계와 산업계의 유대를 다졌다. 학교, 연구소, 산업체가 참석하는 '시멘트심포지엄'을 개최하고, 한일국제세라믹스세미나를 조직해 학술교류는 물론 민간교류에도 힘썼다. 세라믹학회는 그의 호를 따 장학지원 프로그램인 '양송 상'을 제정했다. 1993년 인하대에서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2006년 서울대 설립 60돌 기념 '한국을 일으킨 60인' 상, 2007년 세라믹학회 창립 50주년 특별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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