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없다던, 게임이 전부였던 남자! 김정주 넥슨 창업주는 1996년 게임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 <바람의 나라>를 시작으로 25년째 수직성장하며 게임재벌로 이름을 올렸다. 투자의 귀재로도 불리며 사업이 커질수록 게임 개발보다는 돈을 불리는 데 탁월한 능력치를 뽐냈다. 공격적인 M&A와 투자로 8조 원대 주식부자에도 올랐다. 순위로는 재계 5위로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도 발 아래 두었다. 하지만 게임신화를 이룩하며 성장가도를 달리던 그도 주식뇌물, 횡령 및 배임,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급기야 자신이 일군 왕국, 넥슨까지 던져버리려 한다. 김정주는 분신 같은 넥슨을 정말 떠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뉴스비전e>는 전방위 취재로 10회에 걸쳐 김정주의 넥슨 탈출을 ‘넥시트(Nexit·Nexon+Exit)’라 명명하고, 그 진짜 이유를 파헤쳐 보고자 한다. _재계탐사팀장

■글 싣는 순서
① 게임재벌의 넥슨 탈출기
② 잘못된 지음(知音)으로 상도(商道)를 잃다
③ 헌법 제39조 1항: 석연찮은 대체복무
④ 수상한 짬짜미, “그들만 알고 있다”
⑤ 상장 대신 성장···이탈하는 핵심 개발자들
⑥ 3차산업에 갇힌 넥슨
⑦ 게임중독보다 치명적인 투자중독
⑧ 신화는 가고 의혹만 남아
⑨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
⑩ 에필로그: 비상구는 없다

[뉴스비전e] “어르신, 적당히 좀 합시다. 아니, 겸상을 좀 오래 하니까 대한민국 검사가 아주 X같이 보이시죠. 이참에 우리 한번 들어가서 대사나 좀 맞춰볼까. 태경 센터를 까드려야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아시겠어.”​

“검사님, 다음 주 골프 약속은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검사와 회장의 유착, ‘갑질 검사’와 ‘비리 경찰’의 욕망과 타락을 그린 영화 <부당거래>에 나온 검사와 회장의 대화다.​

현실은 영화보다 영화 같다.​

게임재벌 김정주와 전 검사장 진경준은 <부당거래>의 ‘짜릿한’ 스토리를 현실로 소환했다.

김정주와 진경준 ⓒNAVER

김정주와 진경준의 ‘브로맨스’는 30년 역사를 자랑한다. 고교 동문으로 함께 서울대에 들어오면서 둘은 더욱 가까워졌다. 김정주가 진경준을 더 따랐던 것 같다. 진경준이 검사로 임관된 후 부임지까지 찾아갈 정도로 친분을 유지하려 했다.​ ‘검사친구’는 가까이 둘수록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검찰 조사에서도 김정주는 “친한 친구이기도 하지만 진경준이 검사이기 때문에 (돈을) 준 점을 부인할 수는 없고, 나중에 형사사건에 대해 진경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돈을 주었다”고 진술했다.​

김정주는 2005년 4억2,500만 원 상당의 넥슨 주식을 진경준에게 (사실상) 무상으로 제공했다. 이후 '실버스톤 파트너스'를 설립해 진경준의 주식을 주당 약 10만 원에 사주었다. 또 진경준에게 주당 30만 원 상당의 비상장 넥슨재팬 주식을 주당 11만 원 정도에 매입할 수 있게 해주었고 증자권까지 부여해 결과적으로 122억 원으로 불려주었다. 2008년에는 회사 명의의 제네시스 차량도 무상으로 제공했다. 리스 차량의 명의이전비용 3,000만 원도 주었다.

김정주는 11회에 걸쳐 항공료를 포함한 여행경비 5,000만 원 상당을 대납하는 등 진경준에게 지속적으로 금품을 제공했다. 드러난 것만 해도 이 정도다. 실제 얼마나 금품이 오갔는지는 둘만 알 일이다.​

영화 <부당거래> 스틸컷

“세금 낼 거 다 내면 고생하시는 우리 검사님 양복은 누가 챙기나?”​

“우리 주 검사님 내가 더 좋은 걸 해드려야 되는데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근데 마른 지갑에서 뭘 더 해주기가 힘들어. 주 검사님께서 좀 더 부지런하셨으면 얼마나 좋아.”​

현실에서도 공짜는 없지만 영화와 현실의 결말은 달랐다.​

김정주와 넥슨이 혐의를 받은 사건은 적지 않다. ▲저작권법 위반(2002)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위반(2002) ▲사기(2002)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횡령)(2003) ▲저작권법 위반(2004) ▲사기(2005) ▲사기방조(2006)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2006) ▲외국환거래법 위반(2007) ▲부정경쟁방지법 위반(2007) ▲게임산업법 위반(2010) ▲정보통신망법 위반(2012) ▲횡령(2012) ▲사기(2012) ▲정보통신망법 위반(2012) ▲저작권법 위반(2013) ▲전자금융거래법 위반(2013) ▲사기(2013) ▲사기(2013) ▲사기(2014) ▲외국환거래법 위반((2015) 등. 

이 정도면 법원에 출근도장을 찍는 수준이다.​

김정주는 사법의 칼날 앞에서 위축되는 자신을 보며 진경준에게 더 기댔을지 모른다. 그 덕분이었을까. 판사는 대부분 ‘혐의 없음’으로 김정주의 손을 들어주었다.

게다가 김정주는 최순실 국정농단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도 연결고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넥슨은 2011년 우병우 처가가 보유하던 서울 강남구의 부동산을 시세보다 높은 1,365억 원에 사주면서 김정주가 의도적으로 우병우 측에 이득을 줬다는 의혹이 일었다.

김정주와 진경준의 뇌물수수 혐의는 1심 유죄, 2심 무죄를 거쳐 결국 ‘무죄’로 마무리되었다. 김정주 스스로 진경준의 도움을 받기 위해 돈을 줬다고까지 했지만 사법부는 “지음(知音) 관계이고 직무상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면죄부를 주었다.

지음은 거문고 명수 백아와 친구 종자기가 서로 소리를 알아준 중국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백아는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었다고 한다.

김정주와 진경준이 정말로 지음이라면 둘 다 파멸하는 '부당현실'은 없었을 것이다.

김정주는 검사친구를 때론 창으로, 때론 방패로 썻던 것일까. 하지만 창은 막히고 방패는 뚫리게 마련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할 것 같았던 권력의 핵심에서 무소불위의 칼날을 휘두르던 진경준도 결국 쓰러졌다. 20년 전 단돈 4,000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한 회사원을 구속기소 한 대쪽같던 검사 진경준의 초심은 사라진 지 오래다. '내로남불의 화신'이라는 불명예만 남았다.

게임제국 넥슨도 영원할 순 없다. 김정주가 탈출을 서두르는 것도 그래서일까.

김정주의 넥시트(Nexit)는 돈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최인호의 <상도(商道)>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반란을 모의한 홍경래가 거상 임상옥에게 자금줄이 되어달라고 제안하자 임상옥이 말했다.

“이 향로(솥)를 들어보게.”

영문을 모르고 홍경래가 향로를 드는 순간 다리 하나가 떨어져 나가며 향로가 쓰러졌다.

MBC드라마 <상도> 스틸컷

“솥의 세 발은 각각 재물욕, 권력욕, 명예욕을 뜻하네. 나는 그중 재물로 뜻을 이뤘네. 그런 내가 또 다른 것을 탐한다면 그건 솥을 엎을 뿐이네. 나는 내 자리에 그렇게 서 있고 싶네. 자네 의지가 아무리 확고하다고 해도 자네 욕망은 균형을 갖지 못하고 끝없이 다른 욕망을 탐할걸세. 내 다시 한번 말하겠네. 나는 내 자리에 서 있겠네.​”

김정주는 게임으로 재물을 얻고 명예도 얻었다. 하지만 재물로 권력을 탐하다 명예를 잃고 말았다. 남은 재물까지 잃을까 봐 넥슨을 팔고 탈출하려는 것일까.

[김정주의 넥시트(Nexon+Exit)② 헌법 제39조 1항: 석연찮은 대체복무]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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