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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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정신은 돈을 일하게 한다.
국가의 최고의 동반자는 누구인가요? 
Company(동반자)입니다. 즉 기업입니다.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기업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2006년 5월 24일, 청와대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중 처음으로 대기업 총수들과 공식적으로 한자리에 모이는 역사적 회의가 열렸다. 그 자리에는 삼성 이건희 회장, SK 최태원 회장, LG 구본무 회장을 포함한 30대 그룹 총수, 주요 경제단체장, 중소기업 대표 등 약 40여 명의 국가 산업 리더십이 참석했다.

이 회의의 명칭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보고회’였다. 그러나 이날은 단순한 정책보고회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기업생태계를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로 전환하겠다는 국가적 선언이 이루어진 자리였다.

이 역사적인 선언에서 발제자였던 필자는 “경쟁의 종말, 협력의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담아 ‘상생협력의 새로운 지평: 상생협력의 이론적 타당성 분석 및 발전모델’을 발표했다. 그 배경에는 밀튼프리드먼이 강조한 ‘주주이익 극대화’ 모델이 더 이상 한국 산업구조의 발전 속도와 사회적 요구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기업이 협력업체를 원가절감 파트너로만 보는 관행은 지속가능성을 위협했고, 기업과 사회는 상호 의존적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 선언은 한국 경제의 지향점을 대기업·협력업체·사회 모두를 협력 생태계로 아우르는 이해관계자 중심 자본주의로 이동시키는 역사적 분기점이 되었다.

사람입국에서 상생생태계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대기업 회장들을 공식적으로 만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사람이 당시 오영호 산업정책비서관이었다. 그는 기업을 정책의 대상이 아닌 국가 발전의 전략적 파트너로 초대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고, 이 철학이 청와대 상생회의라는 역사적 순간을 설계한 출발점이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 철학으로 '사람입국'을 내걸고 있었다. 이는 자본 중심의 가치에서 인간 중심의 가치로 국가 체계를 재정렬하겠다는 의지이자, 시장을 사람과 기업이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공동체적 장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였다. 오영호 비서관의 상생회의 구상은 이 사람입국 철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상생 협력을 모색하는 청와대 회의가 제안되었고, 그 제안이 채택되면서 삼성, SK, LG 등 30대 그룹 총수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역사적 회의가 열렸다.

히딩크의 교훈, 경영의 철학이 되다

상생 경영 선언의 핵심 아이디어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에서 출발했다. 월드컵의 열기가 뜨거웠던 당시, 우리는 그 신화에서 중요한 경영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월드컵 4강의 가장 큰 메시지는 “축구에서 단독 드리블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었다.

상생 경영 모델은 바로 이 선언에서 출발했다. 히딩크는 선수 선발 원칙부터 바꾸었다. 그는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열심히 뛰지 않는 선수, 패스하지 않는 선수, 팀 전체보다 자기 득점만을 우선하는 선수는 과감히 제외했다. 여기서 나온 메시지가 바로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였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스타 선수가 빠지고, 그 자리에 박지성이 들어갔다. 박지성은 끊임없이 뛰었고, 패스했고, 팀플레이를 중심에 두었다. 그 순간 한국 축구는 개인기 중심의 시대에서 협력과 팀워크의 시대로 이동했다. 세계 4강 신화는 단독 플레이가 아니라 함께 뛰고 함께 만든 팀플레이의 힘이었다.

히딩크의 스태프들은 이후 아시아 여러 나라의 감독이 되어 협력 중심의 팀플레이 철학을 확산시켰고,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축구에서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냈다. 이 축구철학은 청와대 상생보고회의 경영철학으로 이어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나홀로 경쟁하던 시대를 넘어서 함께 패스하고 함께 혁신하며 함께 승리하는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생이라는 철학적 기반은 약해지고, 동반성장이라는 실행 중심의 정책만 남게 되었다. 상생의 정신은 점차 희미해졌다.

기업은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이다

컬럼비아 대학교 총장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미국 철학자 니콜라스 버틀러는 기업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말했다. 기업은 단순한 이윤추구 조직을 넘어 인류 문명을 움직이는 핵심 엔진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없었다면 증기기관조차 박물관의 전시품에 불과했을 것이다. 기업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 자원, 인재, 글로벌 역량을 갖추고 있다.

오늘날 기업은 세계 인구의 81%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세수를 창출하며 국가 재정의 기반을 만들고, 혁신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이끈다.

노무현 대통령은 상생회의에서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는 말을 남긴다.정치 중심에서 경제 중심으로 권력이 이동하는 변곡점을 알린 말이 되었다.

부동산 중심 경제를 넘어: ‘돈이 일하게 하는 나라’로

기업이란‘돈이 일하게 하는 엔진’이다. 한국 경제는 오랜 기간 부동산 중심 구조에 갇혀 비생산적 자본 축적의 악순환을 겪어왔다. 최근 인플레이션과 화폐가치 하락의 불안은 자본을 다시 부동산으로 몰리게 하고 있다,이는 국토 양극화와 경제 활력 저하의 원인이 되었다.

이 구조를 타파하고 국가가지속성장을 이루려면 자본을 묶어두는 방식이 아니라 기업 투자를 통해 ‘돈이 일하게 하는 나라’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의 부는 오랫동안 부동산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지만, 이는 자본을 비생산적 영역에 가두는 구조를 고착화했다. AI 시대에 우리는 투자 방향을 부동산에서 기업과 주식 성장으로 바꾸어야 한다. 혁신 기업에 자본을 투입할 때 생산성과 고용이 창출된다.

‘세금도 일하게 한’ TSMC의 교훈

정부가 세금을 투자해 국가 대표 기업을 만들어낸 대표적 사례가 바로 대만의 TSMC다. TSMC는 정부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직접 자본을 투입해 설계한 국가 미래산업 프로젝트였다.

1987년, 대만 정부는 공업기술연구원에서 진행되던 반도체 프로젝트를 분리해 독립 회사로 설립하고, 국가개발기금을 통해 48% 지분을 출자했다.

정부는 반도체를 대만의 새로운 생존 기술로 규정하고 산업의 앵커 투자자가 되어 미래 산업을 키웠다. 해외 기술력과 민간자본까지 결합해 혁신 생태계를 만든 구조는 오늘날에도 모범 사례로 꼽힌다.

정부는 이후에도 TSMC의 최대 단일 주주를 유지하며 전략적 거버넌스를 실천했다. 이 구조 덕분에 TSMC는 안정적 자본 조달과 R&D 연동, 글로벌 공급망 확장 등 성장 기반을 탄탄히 다질 수 있었다.

더 중요한 점은 초기 정부 투자가 막대한 국부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대만은 세금을 지출한 것이 아니라 투자한 것이었다.

기업은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협력의 시대, 기업가정신이 살아 있는 나라로 가자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경쟁의 시대를 협력의 시대로, 부동산의 시대를 넘어 ‘돈이 일하게 하는 나라’로 가야 한다.

기업의 본질은 혼자 빛나는 스타 플레이어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팀플레이에 있다.

2002년 월드컵 4강이 증명했듯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원칙은 경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기업가정신이 살아 있는 나라는 단독 플레이로 승부하는 나라가 아니라, 함께 뛰고 함께 이기는 생태계를 구축한 나라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앙정부와 지자체, 기업과 시민이 경쟁보다 협력을 선택할 때 국가의 혁신 역량은 폭발한다.

TSMC 사례는 한국이 왜 지금 부동산 중심 경제를 넘어서 기업 중심 경제로 이동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부동산은 자본을 묶어두지만 기업 투자는 자본을 움직이게 하고 일하게 만든다.

기업이 성장하면 고용이 늘고, 세수가 늘고, 국가 생산성은 높아진다.

그러므로 한국은 이제 세금을 더 걷는 방식이 아니라 세금이 스스로 일하게 만드는 기업가적 국가로 나아가는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AI 혁신 시대에는 창업과 기업 투자가 한국 경제의 새로운 핵심 엔진이 될 것이다.

인터넷 시대 창업 열풍처럼, 다시 한 번 창업의 열기가 사회 전체를 흔들 것이다.

국가는 산업을 키우는 전략적 투자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세금을 지출이 아닌 투자로 전환하여 자본이 기업·기술·혁신으로 흐르게 해야 한다.

부동산에서 기업으로, 혼자 뛰는 경제에서 함께 이기는 생태계로, 자본을 묶는 나라에서 자본이 일하는 나라로 이동해야 한다.

AI 시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기업 유치와 창업 생태계 조성, 전략적 투자 시스템 구축을 통해 국가적 팀플레이를 만들어가자.

저자 소개

김기찬 교수는 현재 인도네시아 프레지던트대학교의 국제총장이자, aSSIST 석좌교수, 가톨릭대학교 경영학부 명예교수이며, 세계중소기업학회(ICSB) 회장으로 활동 중인 대한민국 대표 경영학자다. 기업가정신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통합한 사람중심 경영 철학의 선구자이자, K-Entrepreneurship의 세계화를 이끄는 학계·실무계의 권위자다.

김기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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