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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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전 세계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상승이 단순한 투자 수요를 넘어, 미국 중심의 글로벌 금융체제에 대한 신뢰가 구조적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올해 초 이후 금 선물 가격은 50% 이상 급등했다. 각국 중앙은행은 금 보유량을 늘리고, 투자자들은 달러 자산을 줄이며 안전자산으로 몰리고 있다. 스위스 UBS 그룹의 대종상품 애널리스트 조반니 스타노보는 “중앙은행과 민간 투자자 모두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금을 매입하고 있다”며 “이는 금리 인하 기대감, 달러 약세, 그리고 지속되는 지정학적 긴장 속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번 상승세는 인플레이션이 주도했던 1970년대 금값 급등과는 성격이 다르다. 커머더티 전략가 에바 만테이는 “당시와 달리 지금의 핵심 요인은 ‘물가’가 아니라 ‘체제에 대한 신뢰’의 약화”라며 “금이 1온스당 4,000달러를 돌파한 것은 단순한 자산 가치 상승이 아니라 세계 금융질서의 불안정성을 반영한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번 상승이 과도하다고 경고한다. 미국 럿거스대학의 마이클 볼도 교수는 “금값은 본래 인플레이션 방어 수단이자 불확실성 시기의 피난처지만, 현재의 급등은 두 개의 전쟁, 무역 갈등, 정치 불안 등 여러 위험 요인이 한꺼번에 반영된 결과”라며 “미국의 재정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달러 패권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분석가들은 이번 금값 급등이 단순한 금융현상이 아닌 문명적 위기의 신호라고 지적한다. 경제평론가 아놀드 버트란은 “역사적으로 금값이 글로벌 기축통화 기준으로 두 배 이상 급등한 시기에는 반드시 정치적 격변이 뒤따랐다”며 “지금의 상황 역시 새로운 질서 전환의 전조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79년 이란 혁명과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2011년 유럽 재정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등 금값 급등의 이면에는 언제나 세계적 불안이 존재했다. 그리고 2025년, 다시금 고조되는 지정학적 갈등과 금리 인하, 미·중 무역 긴장 속에서 금은 또다시 ‘문명의 안전벨트’로 주목받고 있다.

최규현 기자 kh.choi@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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