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부 출범과 함께 금융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1호 행정명령으로 비상경제점검TF 구성을 지시하고 1차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첫 일성은 “예대 금리차가 과도하다”는 것. 금융권을 정조준해 직격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관치금융의 악습을 이번에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국내은행들이 쉽게 돈 벌고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낡은 관행의 사슬을 이번에는 확실히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DX(디지털대전환)에서 AX(AI 대전환)시대로 급속히 전환되는 트렌드를 놓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혁신의 칼날을 맞을 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본지는 한국금융의 불편한 민낯을 짚어보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국내 금융의 명암, 20조 수익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上)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률. 대한민국을 감히 IT 강국이라 부르는 대표적인 요소다. 핀테크 열풍과 함께 금융권이 혁신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진단이 낯설지 않은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화려한 외형 뒤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무수히 산적해 있다.
2000년 이후 가속화 된 디지털 전환은 금융산업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시중은행이 전통적으로 독점하던 금융상품 제조와 유통이 분리된 탓이다. 상품 판매는 핀테크 기업은 물론 누구나 쉽게 영업할 수 있는 구조로 전환된 지 이미 오래다.
고객들의 눈높이도 이젠 급격히 높아졌다. 이미 다른 산업에서 혁신적인 추천 알고리즘과 같은 첨단 디지털 경험에 익숙해진 탓에 금융서비스에도 지금까지의 수준 이상을 요구한다. 금융권은 은행, 증권, 카드, 보험 이외에 모빌리티, 건강, 여행 등 생활밀착형 서비스와 연계한 ‘수퍼앱’ 구축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KB금융그룹은 ‘리브 M 알뜰폰’ ‘KB 차차차’ ‘KB 부동산’으로, 신한금융그룹은 SOL야구와 신한 PLAY로 생활금융 영역 확장에 박차를 가한다. 카카오뱅크와 토스 역시 슈퍼앱을 통한 종합금융서비스 전략을 펼치는 상황이다.
'수익증가, 기술하락' 리스크 관리, 미래 먹거리 소홀
그런데 한 가지 기이한 현상이 발견된다. ‘수익 증가, 기술 하락’이다. 2024년 국내 5대 금융지주의 연간 순이익은 20조원. 직원 상여금만 1조원을 넘겼다. 고금리와 예대마진 확대 수혜를 전례없이 톡톡히 누린 것이다.
반면 장기적인 리스크 관리나 미래 먹거리 발굴에는 상당히 소홀했다는 지적이 많다. 또 시중은행 중심의 이익 집중은 서민층과 중소기업에게는 여전히 높은 금융비용과 제한된 접근성을 의미한다.
더 큰 문제는 금융산업내 불평등 심화와 혁신의 후퇴다. 일부 대형 그룹만이 시장을 독점하고 있어 지방은행들이 새로운 도전을 펼칠 공간이 좁아지고 있다는 것. 이른바 금융권의 양극화, 불균형 구조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혁신은 여전히 ‘제로상태’에 머물러 있다. 모바일뱅킹, AI상담원, 로봇어드바이저를 등장시켰지만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냉정한 평가다. 자생적 핵심 기술 확보보다는 대형 SI 기업 의존도가 높은 종속 관계가 더욱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각 재벌급 금융그룹이 수천억원씩 투자해 플랫폼 구축에 나서고 있지만 고객들이 체감하는 서비스 만족도는 높지 않다. 개발비가 최소 10~20배 이상 적게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진 토스, 카카오뱅크 같은 스마트 전용 전문 디지털 금융 사용자 수를 따라가지 못하는 한계가 노출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물론 금융권은 보안 및 개인정보 피해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입장이다. 민감한 정보와 자산이 오가는 산업인 탓에 신기술 도입에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KB금융지주(회장:양종희) '무수익 자본' '해외투자 손실' 등 시대착오 구태 척결해야...
그러나 금융전문가들이 본 가장 큰 원인은 ▼부실 대출과 무수익 자산(이자도 받지 못하는 대출) 급증 ▼해외 투자 손실 ▼높은 은행 수익의존도 등 시대착오적 관행과 내부 역량 부족이라고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2024년말 기준, 부실 대출과 무수익 자산은 5조3,759억원에 달하며 특히 KB국민은행의 경우 무수익 여신이 1분기 만에 48% 증가했고 이중 기업비중이 76%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2금융권도 가파르게 상승하는 추세다.
5대 금융그룹의 해외 부통산 투자 평가손실도 1조원 규모로 집계되고 있다. 하나금융이 –12.22%로 가장 손실이 컸고 KB금융(-11.07%), 농협금융(-10.73%), 신한금융(-7.90%), 우리금융(-4.95%) 순으로 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5대 금융지주의 순이익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80%에 육박한다. 비은행부문(보험, 증권 등) 강화가 필요하지만 여전히 은행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금융이 보험사를 인수하긴 했으나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상대적으로 더딘 상황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시절 대선공약으로 포용금융을 강조하며 중저신용자와 소상공인을 위한 중금리 대출은행 설립, 대환 대출 확대등을 약속했다.
이제, AI 대전환(AX) 시대를 맞아 국내 금융권이 진정한 디지털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근본적인 체질 변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금융기관 스스로 디지털 능력과 결과를 창출하고 단순한 기능 나열이 아닌 고객 중심의 차별화된 서비스 혁신에 적극 나서야 한다.
금융권이 고질적인 관습과 한계에서 벗어나 글로벌 금융기관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대안 제시가 그 어느때 보다 절박한 시점이다.
김창권 대기자 ckckck1225@nvp.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