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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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칼이 되는 시대다. 그리고, 그 말이 누구의 입에서 나오는가에 따라, 칼이 되기도 하고 면도날처럼 얇은 선긋기가 되기도 한다. 6.3 대선을 불과 사흘  앞둔시점에서 지난 5월28일 유시민 작가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가 다시금 한국 정치 담론의 민낯을 드러내 충격을 주고있다.

김문수 후보의 배우자 설난영 여사. 한때 방직공장에서 일하며 가정을 일구고, 조용히 남편의 정치 여정을 뒷받침해온 한 여성이다. 유시민 작가는 그런 설 여사를 두고 “그분의 인생에서 갈 수 없는 자리”라는 표현을 썼다. 대통령 후보 배우자의 자격을 문제 삼는 그 말엔, 명백히 학력과 계급에 대한 선입견이 분명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이어서 “이 사람이 지금 발이 공중에 떠 있다”고 말하며, 설 여사가 영부인 후보라는 위치에 대한 현실감각을 상실했다고 암시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평을 넘어, ‘노동자 출신 여성은 권력의 주변부에 머물러야 한다’는 식의 시대착오적 인식이 은근히 담겨 있는 발언이기에 충분하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유시민은 스스로 진보적 지식인으로 불리는 걸 즐긴다. 그의 글은 언제나 합리와 논리를 무기로 삼아, 보수의 구태와 기득권을 향해 날을 세워왔다.

그러나 정작 그가 놓친 것은, ‘진보’란 타인을 위하는 태도이며, ‘지식인’이란 말은 권위의 갑옷이 아니라 타인의 자리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는 점이다.

설난영 여사를 향한 발언은 단지 한 명의 여성에 대한 폄훼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어떤 자리”에 어울리는 인간이 따로 있다는 선 긋기이며, 배경과 직업, 학력으로 타인의 가능성을 재단하는 오만하고 그릇된  발언이다.

특히 노동과 여성, 비주류에 대한 무의식적 멸시가, 한때 ‘서민의 대변인’을 자처했던 사람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는 점에서, 여.야정치권은 물론 국민적 실망은 더욱 더 크다.

김문수 후보의 정치적 입장이나 과거 이력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살아온 아내의 삶을 ‘감히 넘지 말아야 할 선’처럼 규정하는 건, 어느 누구도 절대 해선 안 될 일이다.

정치의 본질은 배제를 통해 권력을 구획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허물고 사람을 세우는 일이다. 이번 유시민작가의 발언은 그 점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비판해온 정치의 그늘과 너무 닮아 있다.

정치란 결국 사람을 바라보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다. 우리는 지금, 지식인의 말이 품어야 할 책임과 품격이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말은 칼이 될 수 있지만, 칼은 곧 자신을 베는 법이다.

사흘 후면 대한민국의 제 21대 대통령이 탄생한다.

유시민작가의 이번 설화가 각후보들의 지지율에 어떤 영항을 미칠지 예단 할 수 없지만,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이런 상황과 현실이 그저 웃프기만 하다.

김창권 대기자 ckckck1225@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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